<그냥 하지 말라>

(책 속에서)
처음부터 사람의 마음에 집중했던 건 아닙니다. 제가 이 일을 시작하게 된 동기는 데이터에 들어 있는 패턴을 보고 싶었기 때문이었어요. 하지만 데이터가 그려내는 패턴에 어떤 의미가 들어있는지는 미처 알 도리가 없었죠.
과연 데이터를 통해 사회를 볼 수 있을까요? 물론 전부를 보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하지만 사회의 단면을 일정 수준만큼 이해하는 것은 가능합니다.
욕망의 상호작용을 보면서, 저는 서로에 대한 오해와 억측이 얼마나 많은 갈등을 만들어내고 있는지도 조금씩 보았습니다. 선한 의도로 준비한 많은 것들이 사실은 상대방이 진정 원하는지 제대로 관찰하지도 않은 채 마구잡이로 던져진 것이었죠. 그러한 오해와 엇갈림들을 정리해서 2015년에 낸 책이 <상상하지 말라>입니다.
그러던 중 흥미로운 현상이 곳곳에서 목격되었습니다. 우리가 일찍이 주목했던, 미래 세상을 슬쩍 엿보게 해주던 작은 조짐과 징후들이 10년도 채 지나지 않아 사회의 크고 작은 변화를 일으키고 있음을 확인하게 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감히 말씀드리건대, 우리는 미래를 미리 본 것입니다. 다만 그때는 그것이 미래인지 몰랐을 뿐. 그저 잠시 나타나는 작은 변화인 줄로만, 아니면 낯선 유행인 줄로만 알았습니다. 하지만 변화가 누적되고 서로 영향받으며 더 큰 변화를 만들어내는 과정을 숱하게 목격하며, 세상에는 유기체처럼 연결되어 변화의 방향이 합의되는 매커니즘이 있음을 납득하게 되었습니다. 말하자면 예전에 우리가 본 그것은 미리 온 미래였던 셈입니다.
그러한 경험이 반복되면서 제게는 일종의 만트라 같은 문장이 생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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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어날 일은 일어난다.'
일어날 일이 일어나는 이유는 운명론이거나 정해진 결과가 예정되어 있기 때문이 아닙니다. 우리는 그것을 선호하고, 그것을 원하기 때문이다. 모둠살이가 숙명인 인간종의 구성원 한 명 한 명이 원하는 지점, 각자의 욕망이 합의되는 지점, 바로 그 곳에서 일어날 일은 일어납니다.
'미래는 이미 와 있다. 다만 모두에게 균등하게 온 것은 아니다.'
아직 내게 일어나지 않았다 해도 다른 이에게 일어나고 있는 변화라면, 언젠가 나에게도 일어나게 돼 있습니다. 그러니 내게는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이라 해도 변화를 미리 보는 마음으로 읽어주시면 좋겠습니다.
바라건대, 욕망하기를 멈추지 마십시오. 애초에 멈출 수도 없습니다. 욕망이란 나의 존재가 좀 더 안정되게 유지되길 바라는 소박한 마음에서, 내가 소멸한 후에도 나의 존재가 잊히지 않기를 바라는 본능에서, 나의 자아가 같은 종의 다른 개체들에게 존중받고 영향력을 가지길 바라는 무한한 욕심에서 뿜어져 나오는 것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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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야기에는 미래의 삶을 보여주는 힌트가 있습니다. 자동차의 이동성이 많은 것을 바꿀 것입니다. 전망 좋은 집을 마련하기 어렵다면 차를 가지고 움직이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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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새삼 느끼는 게 있습니다. 변화가 정말 빠르다는 것, 그리고 우리가 적응을 정말 잘한다는 것이죠.
바이러스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새삼 깨닫게 했습니다. 보육이 힘들다는 건 누구나 알고 있었지만 이번에 제대로 실감했습니다. 평소 당연히 여겼던 일이 큰 수고로 이루어지고 있었음을 재발견하도록 해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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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생산적으로 시간을 보내는 데 질려서 홈 트레이닝을 하고, 책을 읽거나 영화를 보거나 뭔가를 배우는 행위가 계속해서 늘었습니다. 어느덧 이런 행위는 시간을 보내는 차원을 넘어 새로운 과제가 되기에 이르렀습니다. 말 그대로 자기계발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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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삶에서 취향과 애호라는 것이 무척 소중해지고 있다는 것도 실감하게 됩니다.
커피 한잔에서도 자신의 삶을 더 잘 챙기고 싶은 욕구가 읽힙니다.
예전에는 디테일에 대한 요구가 적었지만 지금은 당연해집니다. 그 당연한 섬세임이 풍요로운 삶을 만드는 전제조건이 되기 때문입니다.
여기까지 보고 나니, 문득 느껴진 것이 있었습니다.
'이 내용을 지금 처음 본 게 아닌 것 같다.'
흔히 데자뷰라고 하죠. 지금 일어나는 일을 전에도 경험한 것 같은 기시감이 든 것입니다.
사실은 본 적 없지만 본 것 같다고 착각하는 현상을 말합니다. 그런데 제가 느낀 기시감은 착시가 아니었습니다. 처음 관찰된 현상이 아니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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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를 이해하고 나면 나 또한 혼자 잘 지낼 수 있도록 독립성과 유연성을 갖추고자 노력해야 한다는 것을 충분히 유추할 수 있겠죠.
과거에 결혼하지 않거나 아이 낳지 않는 이유는 그 행위가 너무 힘들기 때문이었는데, 이제는 딱히 그럴 필요를 느끼지 못해 비혼과 비출산을 택하는 사람이 실제로 늘어나고 있습니다.
자신의 생산성과 사회적 기능을 유지하기 위한 일상의 혁신을 계속 해나가야 합니다. 기술과 세상이 바뀌는 속도에 뒤처지지 않도록 스스로 업데이트를 게을리하지 말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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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이야기를 드는 생각이 '편리하구나' 또는 '비용이 절감되는구나'만은 아닐 겁니다. '그러면 사람이 필요 없네?'까지 연결되죠.
이렇게 되는 순간 인간에게 요구되는 덕목도 바뀔 것 같습니다. 예전에는 성실히, 꾸준히, 열심히 하는 자세를 높이 샀어요. 지금도 그런 면이 있죠. 그런데 로봇 R대리는 잠을 안 잡니다. 밥도 안 먹고 3교대도 필요없어요. 월급을 올려달라는 말도 안 하고, 결정적으로 R대리는 오류를 내지 않습니다. 이렇게 동일한 업무를 꾸준히 하는 분야는 로봇을 이길 수가 없습니다.
더욱이 우리가 이렇게 변화하는 이유가 단순히 자동화에 대한 열망이라기보다는, 앞서 살펴본 대로 사람과의 관계를 제어하고 싶은 욕망의 결과라는 데 주목해야 합니다. 비대면이 아니라 선택적 대면입니다. 나아가 만나고 싶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당위에 어떻게 적응할지도 고민해야겠죠.
향후 10년의 변화는 이것보다 더 빠를 거라 생각합니다. 이미 축적된 정보와 지금까지 깔린 네크워크와 인프라가 변화를 더 가속화할 테니까요.
다만 초반에는 이 질문이 변화의 신호인지 단순한 소음인지 알기 어려울 수는 있습니다. 그때의 방법은, 많이 읽는 겁니다. 책이든 뭐든 꾸준히 많이요. 읽다 보면 패턴이 반복되는 게 보입니다.
여기에 한 가지 더하고 싶은 얘기는, 무조건 열심히만 하는 게 답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잘못된 방향으로 열심히 하면 소진됩니다.
방향을 먼저 생각하고, 그 다음에 충실히 해야 합니다. 어려운 일은 아닙니다. 생각을 먼저 하면 돼요. 일어날 일은 일어날 테니까요. 그냥 해보고 나서 생각하지 말고, 일단 하고 나서 검증하지 말고, 생각을 먼저 하세요. 그 생각의 자료 중 하나로 앞에 말씀드린 3가지 상수도 활용해보시기를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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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이 바뀌면 과거의 계획은 무의미해집니다. 변화가 일어났다는 것은, 삶에 대한 우리의 정의와 그에 따른 준비를 돌아보아야 하는 상태가 되었다는 뜻입니다.
제가 좋아하는 것은 "당신이 태어난 다음에 나온 것"이라는 말입니다. 컴퓨터과학자 엘런 케이의 말인데, 한마디로 내가 새로 배워야 하는 신기한 게 테크놀로지라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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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빠른 변화에 적응하려면 굉장히 큰 에너지가 듭니다. 지금 우리는 각자가 모두 나름의 전투를 벌이고 있는 것 같아요. 매일 생존을 위해 적응의 몸부림을 치고 있는 것이죠. 그에 따라 기존의 불합리한 관행과 마찰이 생기기도 합니다.
시스템이 바뀌어도 사람이 바뀌지 않으면 소용이 없습니다. 같은 변화 앞에서도 사람마다 수용성이 다릅니다. 서로의 욕망이 다르기 때문이에요. 환경 변화가 상수라면 우리의 욕망은 변수가 되기 때문에 같은 변화라도 그 결과는 각기 다른 양태로 나오는 것입니다. 변화에 맞는 새로운 규칙을 합의하기가 쉽지 않은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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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대대적으로 시도해본 것을 계기로 혜택을 느낀 이들이 새로움을 받아들이고, 우리의 문화 또한 새로운 시도에 상당 부분 유연해질 겁니다. 그러면서 이런 형태의 일하는 방식을 수용하는 문화가 자리잡고 프로세스가 변화할 수 있도록 조직도 변신을 요구받을 것입니다.
코로나가 부른 변화를 많은 분들은 '비대면'이라고 하지만, 앞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저는 '선택적 대면'이라고 표현하고 싶습니다.
이미 일어나고 있던 변화죠. 누적된 욕망을 바이러스가 마지막으로 건드린 거예요. 이미 무거운 등짐 위에 마지막 깃털이 떨어져 나귀의 허리를 부러뜨린 것입니다.
이 변화 하나하나가 산업이 될 수도 있고, 우리가 준비해 소비자에게 줄 수 있는 배려가 될 수 있습니다. 관찰은 우리 업의 중요한 출발점이 아닐까 합니다. 우리 삶은 다양한 변화를 언제나 겪고 있으므로 관찰하는 작업을 꾸준히 해야 합니다. 그를 통해 우리의 업을 현재의 변화에 맞춰가야 합니다.
기본적으로 지금은 저성장 시대입니다. 이제는 과거처럼 무한 확장이 어렵고, 지구온난화 등 환경 이슈 때문에라도 예전과 같은 대량생산과 대량소비를 지양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많은 이유로 우리의 삶이 바뀌고 있습니다.
관성이 있으면 실행하면 되는데, 이제는 관성이 무너졌으므로 실행하기 전에 생각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일상에서 생각을 많이 하십니까? 생각이란 사실 몹시 피곤한 행위입니다.
지금은 조직도 기관도 생존을 보장할 수 없습니다. 환경변화도 빨라서 올인이 힘들어지고요. 다양한 정체성이 폄하되지 않고 권장됨에 따라 실제로 그런 사람들이 늘고 있습니다. 다양한 정체성은 오늘날의 사회변화에 잘 적응하고 있다는 증표인지도 모릅니다.
성장기의 경험이 개인의 가치관을 형성하는 하나의 기반이 되고, 일단 가치관이 형성된 후에는 다른 세대 간의 합의가 아무래도 쉽지 않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때는 그랬는데 지금은 아니라면 제도와 시스템 그리고 적응의 노력 자체가 바뀌어야 합니다. 그리고 이때, 우리가 한 지금의 공통 경험이 소중한 인풋으로 쓰일 수 있습니다. 공통의 경험은 공통의 상상을 가능케 하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내가 설명할 수 없는 현상을 설명하려 노력합니다. 그래야 안온감을 느끼고 두 번째 세 번째 시도를 할 수 있으니까요.
여기서 핵심은 '공통'입니다. 종이에 그림을 그려서 돈이라고 했을 때, 혼저 믿으면 교환이 안 되고 모두 다 믿어야 화폐로서 교환되고 가치가 보존되는 거죠. 이게 바로 '공통의 상상'이라는 개념입니다.
중요한 점은 경험과 상상력이 같은 지점에서 출발한다는 것입니다.
변화는 중립적이어서 그 자체가 좋거나 나쁜 것은 아닙니다. 내가 준비를 해놨으면 기회가 되고, 그렇지 않으면 위기가 될 뿐입니다. 그렇다면 사회 변화를 불평하는 것보다는 준비하는 자세가 필요하지 않을까요.
가장 먼저, 본인의 가치관을 의심하시기 바랍니다. 어떤 건 앞으로도 유효하겠죠. 어떤 건 아닐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관행적으로 해왔던 행동을 다 지켜야 한다는 강박은 버리시기 바랍니다. 새로운 시대에 필요한 건 남기고 아닌 것들은 위기에서 얻은 소중한 경험이자 기회가 아닐까 합니다.
그리고 합의를 위한 출발점을 정말 잘 정의해야 합니다. 그걸 못하면 그다음 세대에 예기치 못한 혹은 예상을 뛰어넘는 큰 변화를 넘겨주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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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이 바뀌면 규칙이 바뀌어야 합니다. 우리가 합의해서 만들어놓은 기존의 규칙이 있는데, 각자의 생각이 변화하면 생각의 합인 상식도 변화하므로 새로운 규칙이 필요하죠. 이것이 여기서 말하는 현행화입니다.
시행착오를 거칠 시간이 없을수록 중요한 것은 과학기술과 이성적 사고입니다. 기존에 축적된 과학기술이 있고, 이를 바탕으로 성공 확률을 높이는 이성적 사고가 필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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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과의 중요성
인과를 증명하고 사람들에게 쉽게 전달하는 작업의 중요성
과거로부터 교훈을 얻어 새로운 상황에 대처하는 것
예전의 것에 대한 충분한 검증과, 그에 따른 우리 나름의 새로운 방법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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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onshot Thinking
점진적 개선이 아니라 불필요한 건 다 없애거나 새로운 것을 수용해서 프로세스를 완전히 바꾸는 사고방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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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삶에 투명성을 반드시 탑재해야 합니다. 모든 것이 나우 데이터로 기록되는 시대임을 잊지 마세요. 투명한 시대에는 의사 결정과 근거, 나아가 우리 삶 또한 투명해야 합니다.
절차적 정당성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열심히 해야 하고 착하게 살아야 합니다. 매사 열심히 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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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관적 안녕감
외부적 관찰이나 정의가 아니라 각자의 평가나 감상을 통해서만 행복을 설명할 수 있다는 개념입니다. 행복에 정답이 있는 게 아니라는 거죠.
가치관이 다양하게 변화하면 각자 추구하는 삶의 지향점이 서로에게 동기부여가 되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공주와 왕자가 아니어도 'Happily ever after' 히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무지개 너머 어딘가에 있는 행복을 찾는 노력은 그것이 영원히 이루어질 수 없는 꿈이었다는 깨달음으로 이어집니다. 그래서 더욱더 현재 삶에 충실하기로 삶의 방향타를 바꾸고 있는 것 같습니다.
새로운 니즈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적절한 보상을 할 것인지도 조직의 주요 이슈로 올라가기 시작합니다.
개인에게 성장이 점점 중요한 이슈가 되고 있습니다.
각자가 준비해야 할 것은 무엇일까요?
현대의 노동자들은 유형이건 무형이건 자신이 가진 무언가를 팝니다. 그렇다면 나에게 팔 게 있어야 하지 않습니까? 경쟁의 추이가 바뀐다면 나는 어떤 능력을 얻어야 할지 고민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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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아의 각성
이게 정말 어렵습니다. 타인의 기대와 기준을 목표로 교육받고 살아오다가 갑자기 내 삶의 주도권을 가져와야 하니까요. 여러분은 자기 삶의 주도권을 가지고 있습니까?
누군가의 선택을 받는 게 아니라 내가 선택하는 상황이 되었을 때에는 '내 것'이 필요합니다.
방법은 두 가지인 것 같습니다. 플랫폼을 만들거나 장인이 되는 것. 즉 프로바이더가 되거나 크리에이터가 되거나 둘 중 하나입니다. 결국 이 이야기의 무섭고도 슬픈 결말은, 우리가 완전체가 되는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기록한 것이 어떤 의미와 지향점을 가지는지 고민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나의 기록물은 곧 내가 세상에 보여주고 싶은 것들이며, 내가 표현하고 싶은 메시지가 될 테니까요.
이 생각을 확장하면 자기표현주의가 됩니다. 내 삶을 어떻개 표출해서 나를 증거할지 결정하는 것이죠. 여러분이 하는 모든 행동에 이유가 있어야 하고, 그것을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이 결국 라이프스타일로 수렴됩니다.
이제는 스스로의 흔적을 남기고 성장의 기록을 채록하는 것이 곧 나의 프로파일이 될 것입니다. 그러니 여러분은 무엇을 해야 할까요?
직접 하셔야 하고요.
기록으로 남겨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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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본, 당신은 진짜인가?
우리는 지금 진짜를 찾고 있어요. 즉 의도가 선한 것인가 혹은 평가와 보상을 원하는 것인가를 열심히 보고 있습니다. 우리의 삶이 이렇게 채록된다는 것은 우리의 삶이 언제든 검증되고 대상화될 수 있는 사회로 진입했음을 말해줍니다.
'당신은 진짜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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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가 되는 법
이렇게 해서 우리의 이야기는 진정성에 이르렀습니다. 진정성(authenticity)의 어원은 스스로 무엇인가를 성취하는 것입니다. 결국 진정성 있는 행동이란 내가 의도하고, 내가 행한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