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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병호, 탈무드에서 인생을 만나다> 요약2

Alice12 2023. 3. 1. 1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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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부를 성취하는 데 성공한 사람들 역시 주변 사람들을 움직이는 특별한 재주를 갖고 있을 것입니다.

자신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을 변별하는 능력이 뛰어날 뿐만 아니라 그들을 움직이는 능력도 있습니다.

쓸모가 없어진 사람들과의 관계를 명확하게 정리하는 데도 능숙합니다.

힘을 가진 사람들이 처음부터 사람을 움직이는 재주를 갖고 있었을 수도 있습니다.

아니면 계속해서 사람을 움직이는 일을 하면서 능력을 차곡차곡 발전시켜 왔을 수도 있습니다.

어떤 경우든 자신의 이익에 맞추어서 주변 사람들을 자기 의도대로 움직이는 특별한 능력을 갖게 되었을 것입니다.

<탈무드>의 조언은 힘을 가진 사람의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게 주는 것입니다.

 

“당신이 따르고 의지하고 모시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사람을 움직이는 면에서 뛰어난 능력을 가진 사람임을 잊지 마세요. 그 사람은 당신이 자기 이익에 도움이 되면 옆에 두고 이용하겠지만 활용 가치가 없다면 버리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리라는 사실을 잊지 말기 바랍니다.”

“사업가에게 필요한 덕목 가운데 하나가 명확하게 사람을 정리하는 능력이에요. 사람과 관계를 맺다 보면 과거의 인연 때문에 어느 정도까지는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정도에 대해 도움을 주는 사람과 받는 사람 사이에는 차이가 있어요. 적절할 때에 그런 관계를 깔끔하게 청산하지 못하면 사업을 계속 성장시키기는 힘들어요.”

 

세상이란 본래 이익을 주고받는 촘촘한 망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잘되는 가게의 문 앞에는 많은 친구들과 친척들이 모여있다. 반면에 쇠락하는 가게의 문 앞에는 친척도 친구도 없다.”

모든 인간관계에서 관찰할 수 있는 일입니다.

나누어줄 것이 있는 사람의 주변에는 늘 사람들이 꼬입니다.

반대로 나누어줄 것이 없으면 언제 그런 일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모였던 사람들이 흩어집니다.

지나치게 민감하게 이익에 따라 움직이는 사람들을 보면 마음이 다소 불편해지는 것이 사실입니다.

마음이 편하지 않지만 피할 수 없는 진실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것에서 자유로워지려면 남에게 줄 수 있는 것을 가져야 한다는 이야기일 수도 있습니다.

나아가 뭔가를 남에게 베풀 때도 돌려받을 기대를 하지 않으면 베푸는 자체에서 행복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사막 한 가운데에 오아시스를 형성하고 있던 소돔과 고모라는 젖과 꿀이 흐르는 곳이었을 뿐만 아니라 금과 은이 풍부한 지역이었습니다.

그 풍요로움에 취한 소돔과 고모라 사람들은 독특한 윤리와 도덕을 만들어내는데, 그것이 바로 극단적 개인주의입니다.

나만 생각하면 되고 남이 죽든 말든 내가 알 바 아니라는 것이지요.

“나에게 속한 것은 나의 것이고 당신에게 속한 것은 당신의 것이다.”

소돔과 고모라 사람들은 노약자와 병자, 노인들을 배려하지 않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다른 지방에서 온 나그네들을 박해하고 가혹하게 다루었습니다.

국경은 엄격하게 봉쇄되었고, 몰래 들어온 이방인들은 멸시를 당했을 뿐 아니라 가혹한 처우에 고통 받아야 했습니다.

빠른 시간 안에 불친절함은 무자비함으로 바뀌었고, 그런 태도는 도시민들 사이에 공유되고 후대에 전해졌습니다.

 

요컨대 극단적인 개인주의가 소돔과 고모라 몰락의 큰 원인이 되었다는 것이 랍비들의 주장입니다.

이를 상징적으로 표현하면 ‘그건 내 문제가 아니야’라는 태도가 소돔과 고모라의 몰락을 불러왔다는 것입니다.

다들 자기 이익만 생각할 뿐 공동체 전체의 이익에는 신경 쓰지 않았고, 그 결과는 공동체의 몰락이었습니다.

 


진정한 행복은 영혼 관리에 있다

 

“그들이 이같이 내 이름으로 이스라엘 자손을 축복할지니 내가 그들에게 복을 주리라.”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에게 힘을 주심이여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에게 복을 주시리로다.”

 

유대인들에게 샬롬(shalom)이라는 인사는 ‘당신의 모든 삶(내적, 외적, 물질, 관계)에 하나님으로부터 비롯되는 온전한 평화가 깃들기를 기원합니다.’라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우리말로 평화로 해석되는 히브리어 단어 샬롬은 완전, 견실, 건강, 온전, 번영, 평온, 성공, 행운, 행복 등을 폭넓게 뜻하는 말입니다. 여기서 행복도 세속적인 행복과 구분하여 완전한 행복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탈무드>는 완전한 평화란 인간의 노력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지는 복(blessing)이라고 말합니다.

유대인들은 이처럼 평화의 원천을 인간적인 노력이 아니라 하나님에서 찾고 있습니다.

<탈무드>의 또다른 부분에서는 하나님이야말로 평화의 원천임을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은 평화이다. 하나님의 이름은 평화이며 모든 것은 평화속에서 하나로 묶인다.”

사람은 늘 변화하는 존재입니다.

그렇다면 사람의 노력으로 얻는 평화는 언제든 달라질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평화와 행복을 주는 것들은 많습니다.

물질, 명성, 지식, 소유, 자녀 등. 그런 것들은 우리에게 일시적으로 평화와 행복을 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가운데 영원한 것은 없습니다. 유대 전통에서의 행복은 대체로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지는 행복을 말합니다.

모든 것들은 늘 변화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변화하지 않는 행복과 마음의 평화를 얻을 수 있는 길을 찾는 것이 현명한 인간의 모습일 것입니다.

 

육체와 영혼은 분리된 것일까?

 

카라칼라 황제는 육체와 영혼 어느 한쪽이 죄의 책임을 질 수 없다고 주장합니다.

육체는 영혼이 죄의 원천이라고 말하는데, 영혼이 없다면 육체는 무기력한 덩어리로 바뀔 것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반면에 영혼은 순수한 실체이기 때문에 죄를 범할 수 없다고 주장합니다.

그런 카라칼라 황제의 주장은 영혼과 육체가 분리된 것으로 간주하는 이분설에 바탕을 두고 있습니다.

그리스 로마 철학은 ‘인간의 영혼은 선하지만 육체는 악하다’라는 이원적인 사고방식을 갖고 있었습니다.

이 주장에 대해 랍비는 한 우화를 들려줍니다.

우화 속 왕은 맹인과 절름발이를 한 사람으로 간주합니다.

그리고 영혼과 육체를 하나로 받아들여 그 둘이 이 땅에서 행하는 모든 일에 책임이 있다고 말합니다.

이는 유대교가 ‘육체는 악이다’라는 생각을 받아들이지 않는 데 기인합니다.

이 우화는 오늘날의 우리에게 어떤 교훈을 줄까요?

예를 들어 뇌물을 받은 일이 발각되어 치명적인 오명을 입고 법적인 책임을 지게 되는 경우에 육체와 영혼을 따로 구분할 수는 없습니다.

물적인 욕망이나 육적인 욕망을 이기지 못해서 양심을 버리면 그 일에 대해 영혼과 육체가 함께 책임을 져야 합니다.

잘못된 행동은 그를 제어하는 사회적 제도나 개인적 양심에서 발생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지금은 보이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는 시대이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영혼을 잘 다듬고 훈련시키는 일은 모든 사람들에게 반드시 필요한 일입니다.

아름다운 영혼에서 아름다운 행동과 삶이 나올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영혼은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하나는 생명력이고 다른 하나는 인내하는 힘이며, 마지막 하나는 높은 인식 능력이다.”

 

자본주의는 모든 것을 사업의 대상으로 삼습니다.

팍팍한 세상살이에 지친 사람들이 안식을 찾기 위해 소위 ‘영적 전문가’를 찾기 때문에 그들의 활동도 점점 확대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질이나 의도가 나쁜 영적 전문가들도 있습니다.

저는 그런 이들을 ‘영혼 장사꾼’이라고 표현하고 싶습니다.

이들은 영혼에 관한 지식을 사익을 위해 활용하는 사람들입니다.

지금은 영혼 장사꾼들의 활동이 왕성한 시대입니다.

그래서 더더욱 영혼에 관해서 올바른 지식을 가질 필요가 있습니다.

 

인간은 혼과 영을 모두 가진 존재이기 때문에 영에 대한 지식도 반드시 필요합니다.

안타깝게도 대부분의 부모와 교사들은 혼에 관해서는 어느 정도 지식을 갖고 있지만 영에 관해서는 별다른 지식을 갖고 있지 못합니다.

따라서 순수한 학생들은 영에 관한 지식으로 무장한 사람들에게 얼마든지 이용당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영혼 장사꾼들에게 붙잡혀서 귀한 젊은 날을 소모하는 젊은이들을 드물지 않게 볼 수 있는 이유입니다.

밖에서 보는 사람에게는 문제가 보이지만 어떤 종교에 깊이 빠진 사람에게는 보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이른바 영적 분별력이 없는 성인들도 많기 때문에 사회적으로 나쁜 영향을 미치는 종교 집단과 관련한 피해 사례는 끊이질 않습니다.

 

그렇다면 <탈무드>에서는 영혼을 어떻게 다루고 있을까요?

<탈무드>에서 영혼을 집중적으로 다루는 책은 <조하르>입니다.

이 책은 유대교의 신비주의적이고 영적이며 비밀스러운 전통인 ‘카발라’의 중요한 경전입니다.

‘조하르’라는 히브리어 단어의 뜻은 ‘광채, 빛남’입니다.

모세 오경에 대한 신비주의적인 해석서인 <조하르>에는 하나님의 본질, 우주의 기원과 구조, 영혼의 본질, 죄, 선악에 대한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조하르>에서는 영혼에 대한 지식은 ‘비밀들 가운데 비밀’이며 마음에 지혜가 있는 자들에게만 주어지는 것으로 간주합니다.

영혼에 대한 유대인의 지식이 절대 진리라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그들이 오랫동안 숙고하고 토론해 온 결과를 관심 있게 들여다볼 가치는 충분합니다.

<탈무드>는 영혼은 세 개의 층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들은 서로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고 말합니다.

네피시, 루아흐, 네샤마가 그것입니다.

 

네피시: 감정적인 영혼, 낮은 자아

네피시는 영혼 가운데 숨, 목숨, 감정, 욕망, 실존을 가리킵니다. 네피시는 잠을 잘 때, 특히 꿈을 꿀 때 우리를 지배하는 영혼의 한 부분이며, 무의식이나 다양한 감정, 욕망들을 모두 포함합니다. 우리의 육체는 네피시의 영향력에 의해 통제되고 형성됩니다. 네피시는 강력한 힘을 발휘하기 때문에 ‘힘 있는 자아(Power Self)’로 불리기도 합니다. 네피시는 육체나 성적인 본능과도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루아흐: 정신적인 영혼, 의식적인 자아

루아흐는 보편적으로 생명을 일으키는 힘을 말합니다. 공기나 바람 같은 자연현상학적 개념, 마음, 분노, 용기, 생명력 등과 같은 생명적인 개념, 그리고 사람의 영, 하나님의 영과 같은 실존적인 개념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루아흐는 깨어 있을 때의 모든 활동을 지배하는 의식과 깊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학습하는 능력과 관련된 지적 능력의 원천입니다. “루아흐는 목소리이고, 지식이라 불리기도 한다. 그것은 모세 오경을 학습하면서 큰 목소리로 그 내용을 읽는 것과도 관련되어 있다. 그것은 ‘기록된 토라’라고 불리기도 하고 ‘정신적인 영혼(Mental Soul)’ 혹은 지적인 영혼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그것으로부터 선행이 나온다.” 루아흐는 네피시와 대조적으로 ‘의식적인 자아(Conscious Self)’라고 불립니다. 배우는 것, 대화하는 것, 생각하는 것, 기록하는 것처럼 거의 모든 이성적인 활동이 루아흐에서 비롯됩니다. 누구도 자신의 지적 능력을 근거로 ‘내가 가진 능력은 다른 사람들이 도저히 가질 수 없는 능력’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어느 누구도 유식함 때문에 성스러운 존재가 될 수 있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루아흐는 네피시를 지배합니다.

즉 우리는 자각이나 자기 통제를 통해서 자신의 감정을 제어합니다. 루아흐와 네피시는 서로 연결되어 있으며, 두 가지가 우리의 도덕적 정체성을 형성합니다. 루아흐는 네피시에 비해서 생명력이 강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영원한 것은 아닙니다. 참고로 루아흐 역시 두 종류로 나뉩니다. 하나는 성스러운 루아흐이고 하나는 동물적인 루아흐입니다.

 

네샤마: 영적인 영혼, 높은 자아

‘네샤마’라는 히브리어 단어는 영혼, 정신, 호흡을 뜻합니다. 네샤마는 우리의 정신 가운데에서 매우 높은 수준을 가리킵니다. 일반적인 사람은 높은 수준의 네샤마를 갖기 힘듭니다. 영적인 삶을 추구하는 사람들조차도 네샤마에 접근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자신을 정화함으로써 네샤마에 다가갈 수는 있습니다. 네샤마는 우리 영혼의 가장 높은 부분에 자리 잡고 있는 영원한 영혼입니다. 인격을 정화함으로써 네샤마가 우리의 삶에 영향력을 발휘하게 할 수 있습니다. 높은 수준의 영혼이 낮은 수준의 영혼을 지배하기에, 네샤마는 루아흐와 네피시를 지배합니다. 그리고 루아흐가 네피시를 지배합니다. 이처럼 우리 영혼은 가장 높은 곳에 네샤마가, 그 아래에 루아흐가, 그 아래에 네피시가 자리 잡고 있는 구조입니다. 네샤마도 그 안에서 계층 구조를 갖고 있습니다. 네샤마의 가장 높은 곳은 우리에게 지혜를 가져다줄 뿐만 아니라 하나님에 대한 경외감을 갖도록 도와줍니다. 그리고 네샤마의 가장 낮은 곳은 분별력과 죄에 대한 회개를 가능하게 합니다. 만일 어떤 사람의 영혼을 네샤마가 지배하게 되면, 그 사람은 하나님에게 헌신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런 사람을 ‘성스러운 사람’이라고 부릅니다.

 

어떤 사람이 아름다운 정원에 있더라도 라디오를 크게 틀어놓으면 아름다운 새소리를 들을 수 없습니다.

여기서 라디오 소리는 세상의 온갖 즐거움과 이기적인 욕망을 말하며, 새소리는 네샤마와 같은 높은 자아를 말합니다.

새소리는 사실 새가 그곳에 있을뿐만 아니라 아름답고 노래하고 있습니다.

세속적인 것에 눈이 가린 채 바쁘게 살아가는 현대인들은 네샤마를 알기가 힘들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네피시는 누구에게나 문이 활짝 열려 있습니다.

모든 인간은 육체를 갖고 있고 감정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루아흐에 접근하는 일은 네피시보다는 어렵지만 이 역시 아주 힘든 일은 아닙니다.

지식, 논리, 이성을 이용해서 감정이나 욕망을 적절히 제어할 수 있다면 루아흐에 접근할 수 있습니다.

 

영혼 장사꾼들은 영에 관한 나름대로의 전문가들입니다.

그들은 자신만의 특별한 지식으로 무장하고 있기 때문에 그 분야에 무지한 일반인들의 눈을 가릴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눈이 가려지면 오랫동안 쌓아온 모든 것을 영혼 장사꾼들에게 바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스스로를 보호하는 차원에서도 영에 관한 지식을 어느 수준까지는 쌓아야 합니다.

 

개개인이 분별력을 가질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일이지만, 그런 경지까지 올라가는 데는 상당한 시간과 지적 투자, 그리고 은혜가 필요합니다.

세상에는 다양한 종교 이론으로 무장했지만 마음은 청결하지 못한 영혼 장사꾼들이 많기 때문에 특별한 주의가 필요합니다.

진정한 영혼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으면서 영혼에 대한 지식을 쌓고, 네샤마에 가까워지도록 노력해나가는 것, 그것을 평생의 목표로 삼고 살아간다면 언젠가 네샤마에 다가갈 수 있을 것입니다.

적어도 영혼 장사꾼에게 속는 일은 없을 것이고, 삶의 중심을 잡고 살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너희 중에 다른 신을 두지 말며 이방신에게 절하지 말지어다. 사람 안에 거하는 이방신은 누구인가? 그는 바로 사악한 욕망이다.”

 

<탈무드>는 분노와 시기심 같은 사악한 욕망에 휩싸여 생각하고 행동하는 사람이 자신도 모르게 우상 숭배를 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영혼의 세 부분 가운데 최고인 네샤마와 더불어 살아가는 방법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요?

모세 오경의 해석서인 <조하르> 역시 인간적인 노력을 강조합니다.

영혼을 더럽힐 수 있는 분노, 질투, 시기심, 탐욕, 갈망, 지적 교만, 자만심 같은 강한 욕망이 마음껏 활보할 수 없도록 인간적인 노력을 하라고 권합니다.

그리고 <구약성경>과 <탈무드>의 율법이 어느정도 도움을 줄 수 있다고 말합니다.

 

유대인 현자들은 네샤마와 더불어 살아갈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으로 어떤 것들을 권했을까요?

그들은 오랜 기간에 걸쳐서 작은 일들을 바르게 실천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올바른 실천을 생활화하기 위해서 수많은 율법들을 제시했을 것입니다.

좋은 욕망은 네샤마로부터 비롯됩니다.

좋은 행동을 계속해서 반복하라는 것입니다.

좋은 행동을 계속 반복하면 그 행동은 결국 제2의 천성처럼 우리 몸에 새겨집니다.

 

“작은 선행이라도 계속해서 행하라. 그러면 죄로부터 자유로워질 것이다. 한 가지 선행은 또다른 선행을 낳으며, 한 가지 죄는 또다른 죄를 낳을 것이다. 한 가지 선행에 대한 보상은 또다른 선행이며, 한 자기 죄에 대한 보상은 또다른 죄이리니.”

 

한편 유대인 현자들은 영혼의 다른 두 부분을 정화하는 방법도 권합니다.

네피시와 루아흐를 방해하는 분노, 질투, 시기, 지적 교만, 자만심 같은 내 안의 우상을 깨끗하게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면 우리의 영혼 안에 있는 가장 상위의 부분, 즉 네샤마를 끌어낼 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유대인 현자들은 모세 오경을 열심히 공부하면 네샤마를 활성화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율법의 실천을 통한 인격 향상이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일이라고 그들은 생각합니다.

“하나님이 거룩한 즉 너희도 거룩하라.”라는 성경 말씀대로 율법을 엄격히 지키는 거룩한 생활을 통해서 하나님의 형상을 닮아가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믿습니다.

 

인간이 영혼의 문제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것은 두 가지 이유 때문입니다.

하나는 인간은 물질적인 성취만으로는 행복하기 쉽지 않은 존재입니다.

나이가 들면서 인간은 실존적 허무감이나 불안감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합니다.

실존적 허무감을 넘어서 참다운 행복을 구하려면 영혼을 제대로 이해해야 합니다.

이런 문제에 대한 근원적인 해결책은 영혼에 관해 올바른 견해를 갖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영혼 장사꾼들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서입니다.

 

“인간은 필요한 것을 하나님에게 간구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인간이다. 필요로 하는 모든 것을 하나님에게 간구하라.”

 

유대인들의 기도는 무언가를 구하는 것보다는 자신의 안을 들여다보는 일, 즉 회개에 더 큰 비중을 둡니다.

유대인들에게 기도는 곧 묵상을 뜻하기도 합니다.

“이삭이 저물 때에 들에 나가 묵상하다가 눈을 들어 보면 낙타들이 오는지라.”

여기서 묵상은 기도를 뜻합니다.

그들의 기도는 하나님을 경배하는 시간이자 자신의 죄를 회개하는 시간입니다.

“야곱이 그 아버지 이삭에게 가까이 가니 이삭이 만지며 이르되 음성은 야곱의 음성이나 손은 에서의 손이로다 하며.”

“음성은 기도이지만 손은 폭력이다. 유대인은 오로지 기도를 통해서 지배하지만 로마인은 오로지 폭력을 통해서 지배한다.”

랍비들은 기도야말로 유대인들이 가진 가장 큰 무기라고 말합니다.

막강한 제국들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말았지만, 유대 민족은 생존하는 데 성공하였습니다.

성공의 결정적인 요인으로 많은 이들이 기도를 듭니다.

 

 

출처: <공병호, 탈무드에서 인생을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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