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이 된다는 건>
(내가 좋아하는 작가가 쓴 책의 내용들을 적어본다. 나의 머릿 속이 가장 맑은 새벽 시간에 그녀의 소설을 읽다보면 과거의 기억과 상상이 만든 세상으로 여행을 다녀온듯한 기분이 든다. 시간이 다 되면, 다시 현실로 돌아갈 준비를 한다. 에너지가 넘치는 하루를 보낼 수 있게 되었다. 늘 감사하다.)
이제부터 이 글을 통해 많은 말을 전하게 될 텐데, 딱 한 가지 하고 싶은 말은 "어른이 되지 않아도 괜찮아요, 다만 당신 자신이 되세요." 입니다.
그것이 여러분이 이 세상에 태어난 목적이니까요.
아무쪼록, 이 말을 새기고 읽어 주세요.
그리고 지금은 다소 어렵게 여겨지는 부분이 있더라도, 언젠가는 기억하고 떠올려 주세요.
이 책은 먼 앞날에 이르기까지 여러분에게 힘이 될 수 있을 거예요.
어른이 된 후에는 어린 시절을 되찾아 자신의 본디 모습으로 돌아가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일단 어른이 되고 나면, 모든 상황에서 가장 필요한 것이 바로 어린 시절의 감각이죠.
인생을 헤쳐 나가기 위한 길잡이는 그것밖에 없습니다.
나이가 몇 살이든 직업이 무엇이든 그건 다르지 않아요.
다만 어린 시절에 체험한 일의 가치와 자신이 원래부터 갖고 있던 것의 중요함은 어른이 되지 않고는 그 의미를 알 수 없으니, 인생이란 참 절묘한 것 같습니다.
...
외로움에는 역시 의미가 있었습니다.
그 외로움을 경험했기에, 그 후 어른이 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괴롭고 힘겨운 일은 자신의 깊은 곳까지 뒤틀어 놓기도 하고 또 그 당시에는 정말 괴롭기도 하지만 나중에는 반드시 어떤 토대가 되기 마련입니다.
...
사람은 뭘 하기 위해 태어났을까요.
저는 각자가 자기 자신을 끝까지 밀고 나가기 위해 태어났다고 생각합니다.
사람이 그렇게 자신을 끝까지 관철하면, 왜 그런지는 몰라도 반드시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주는 존재가 되더군요. 인간이란 애당초 그렇게 생겨 먹은 존재라고 생각합니다.
괴롭고, 고통스럽고, 귀찮은 것은 충분히 살지 않는 상태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충분히 살지 않는 상태에 있으면 주위에도 비슷한 사람들만 모여들기 때문에 온 세상이 다 그런가 보다 하고 생각하게 됩니다.
하지만 충분히 산다는 것은 정말 고된 일이죠.
느긋하게 풀어져 있는 듯하면서 마음속은 언제나 날카롭게 반짝거려야 살아 있음이 보장되는, 그런 매일이라고 생각합니다.
...
그러니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한껏 하는 게 좋겠습니다.
그것이 미래의 자신이 지금의 자신에게 보내는 가장 소중한 메시지라고 저는 생각해요.
그 점을 명확하게 이해하는 것이야말로 어른이 되는 것 인지도 모르겠군요.
<South Point의 연인>, 요시모토 바나나
"아니지, 테트라. 네가 가장 소중히 여기는 것부터 챙기는 거야."
인간은 언젠가는 반드시 두 발을 딛고 살 정착지를 찾는 법인가 보다.
주변 사람들은 모두 엄마가 평생 떠돌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그곳에는 푸근하게 녹아들었다.
그러자 주변에도 활기가 생겨났고 지역 사람들도 태도를 싹 바꿔 성원을 보내 주었다.
엄마에게는 다소 장사 수완도 있었다.
게다가 남자들에게도 인기가 많아 인생이 제법 순조로웠다.
요가나 기공, 자연과 함께하는 삶을 좋아하는 까닭에 도시의 번잡스러움에서 조금 벗어나 여기 산다는 사람들도 왁실히 있는 곳이라, 엄마는 그런 사람들 속에서 자신의 자리를 찾아 삶을 일궈 나가는 듯했다.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
결국은 그 사람이 원하는 대로 될 뿐이다, 그 사실을 뼈저리게 깨달았다.
'만약 우리를 조금이라도 사랑한다면 당신의 생활을 바꾸도록 해.'
최대한 감정을 죽이고 담담하게 했다.
깊이 생각하면 눈물이 멈추지 않고 어린애로 돌아갈 것만 같았다.
하지만 그때의 내게는 어린애로 돌아갈 여유가 없었다.
내가 아니면 나를 지킬 수 없었다.
현실적으로 대처하면서 더욱 분명해졌기에 내 마음을 다잡을 수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 남자와는 거의 얼굴을 마주하지 않는 일상이 시작되었다.
스트레스가 컸지만, 그 대신 하루라도 빨리 집을 나가야겠다는 결심은 단단해졌다.
'이렇게 힘든 때 옆에 없는 사람은 이제 필요 없다.' 라고 진심으로 생각했다.
늘 빛 속에 있을 그가 얄밉기까지 했다.
편지가 와도 답장을 보내지 않고, 하와이 섬으로 놀러 갈 거라는 계획도 휴지 조각으로 만들고, 내 쪽에서 소식을 끊고 말았다.
엄마에게 주먹으로 한 대 얻어맞은 그는 점차 어색해했고, 결국 집에서 쫓겨났다.
나는 죽어라 공부해 장학금을 따서는 도쿄에 있는 미술 대학으로 진학했다.
꼬인 일이 해결될 때에는 대개 그렇다. 단숨에 풀린다.
미대에 들어간 나는 이제 돌아오지 않을 것인 데다 연락도 뜸한 다마히코를 깨끗이 잊고 인생을 즐기기 시작했다.
마치 쌓인 울분을 터뜨리듯 연애를 하고 동거도 하고, 디자인 공부도 본격적으로 했다.
요즘 들어서야, 미소와 함께 떠올릴 수 있게 되었다.
내 작품을 정리한 책이 아주 적은 부수나마 출판되었다.
그랬더니 출판 부수가 정말 적었는데도 앞으로 5년 치 정도의 일거리가 밀려 들어왔다.
아무튼 앞일은 생각지 말고 5년 동안은 해보기로 했다.
지금 나는 퀼트를 중심으로 안정된 생활을 하고 있다.
지금 엄마는 세 번째 애인과 살고 있다.
가게에서 기르는 강아지보다 애인의 세대교체가 훨씬 빠른 것 같다.
그가 등장한 후로 우리 집이 좀 더 안정되어 집 다워진 덕분에 나도 가기가 수월해졌다.
그와는 그런대로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집을 떠나고 한동안은 엄마를 원망하기도 했지만, 어른이 되면서 다시 엄마를 좋아하게 되었다.
절대 믿지는 않지만, 그래도 좋아한다고 생각한다.
엄마는 아름다웠다.
그 아름다움은 살면서 본 아름다움 중에서도 몇 손가락 안에 드는 것이었다.
불행으로 기울어 가는 결혼 생활에서 해방되어 반짝반짝 빛나는 엄마를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걸 사치스럽다고 한다면, 사치스러워도 좋다.
조금만 먹어도 좋다.
나의 사고는 그런 식이고, 세상과 동떨어진 생활을 하고 있는 점은 집에 있을 때나 지금이나 별다르지 않다.
히피 출신인 엄마가 먹는 것에는 까다로웠기 때문에 입이 고급스러워졌는지도 모르고.
<몸은 모든 것을 알고있다>, 요시모토 바나나
병원이란, 현관을 들어서는 순간에는 거북하고 불편해서 빨리 돌아가고 싶지만 시간이 좀 지나면 익숙해지는 곳이다.
그리고 밖으로 나오면 모든 것이 너무 강렬하게 느껴진다.
그러다 집에 도착할 무렵이면 이미 그런 것들에 길들어 있다.
오가다 보면 자신이 불가사의한 지점에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리고 할머니 생각에, 너는 이해할 것 같구나, 그런 감성을 말이다. 식물이란 그런 거야. 알로에 하나를 구해 주면, 앞으로 많은, 여러 장소에서 보는 알로에도, 너를 좋아하게 될 거다. 식물끼리는 다 이어져 있거든."
매일매일 부지런히 움직이다 보면 길은 열리는 법이다.
아무튼, 바텐더가 되기 위해 공부했을 때처럼 단순한 나날을 반복하는 수밖에 없었다.
나는 겨울 햇살 속에서 알로에의 사랑에 잠겨 몸이 따끈따끈해지는 느낌이었다.
그런가, 이렇게 이어지는 것인가, 이제 알로에는 언제 어디서 보든 따뜻하고 포근한 것으로 이어진다.
어떤 알로에든 내게는 그 밤에 내가 옮겨 심은 알로에의 친구다.
변함없이 인간과 연을 맺으면서도, 나는 많은 식물과 이렇게 서로를 바라볼 것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할머니에게서 물려받은 것은 설사 근거 없는 미신 같은 것일지라도, 확실하게 도와주는 힘, 사람들이 '초록 반지'라 말하는 그것이다.
이 재능이 있으면 식물은 내 품 안에서 마음껏 그 생명을 꽃피울 수 있으리라. 그리고 나 또한 그런 일을 하는 사람들과 이어지리라.
"신나고 애틋한 느낌이에요. 할 수만 있다면 기억하고 싶을 정도로. 대충 짐작은 가는데, 작지만 중요한 일이 있었던 것 같아요. 시간이 앞뒤로 뒤죽박죽이고 그래서 기억이 잘 안나요."
"그럼 눈을 감아 보세요. 그리고 호흡을 가다듬고, 의식은 분명하지만, 조금씩 과거로 돌아고도록 합니다."
선생님이 말했다.
물가는 연꽃으로 덮여 있고, 어둠 속에서 커다란 연분홍 꽃이 입을 활짝 벌리고 있었다.
저 건너 기슭까지 무수한 연꽃이 보였다.
하늘에는 조그만 달이 빛났다.
연분홍 연꽃의 아름다움이 눈 속에 각인되어 시야가 부옜다.
"천국이 아마 이런 데일 거야."
나는 누구와 손을 잡고 있었고, 그 사람이 그렇게 말했다.
"맞아, 엄마."
나는 대답하고 그 사람을 올려다보았다.
거이 잊어버렸던 얼굴을 나는 또렷하게 기억해 냈다.
"기억나게 해 줘서 고마워요. 정말 소중한 기억인데."
<하치의 마지막 연인>, 요시모토 바나나
(고등학교 때 읽었던 책인데, 나에게 소중한 책 중 하나였다.)
그 시절, 내가 속한 세계에서 내 귀가 알아들을 수 있고 색깔 있는 말을 하는 사람은, 안 지 얼마 안 된 하치뿐이었다.
그래서 하치와 지내는 시간만이 유일하게, 내가 나 자신과 데이트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그 한때는 아주 짧고 애틋한 랑데부였지만 모든 것을 보듬고 있는 싹이었다.
아이들은 천국에서, 어느 엄마의 몸으로 들어갈까를 정한다는 얘기가 있다.
분홍빛 뭉게구름 위에서 이루어진 천사의 결단이다.
그때부터 이미, 무언가가 결정되어 있는 것이다.
"그림은 괜찮다. ... 그 열쇠는 그래, 하치라는 아이한테 있어, 너는 하치의 마지막 연인이 될 거다."
"뒤를 이어서는 안 된다, 그림을 그릴 것, 하치, 중요, 하치의 마지막 연인."
그래서, 정말 하치란 사람이 나타났을 때에는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
내 머릿속에서 만트라(신비한 힘을 지닌 글귀, 진언)처럼 하치란 이름이 거듭거듭 울리기 시작했다.
하치는 열여덟 살이나 스무 살 정도로 보였다.
어쩌면 훨씬 더 위일지도 몰랐다.
<매일이, 여행>
여행이란 장기간에 걸치지 않는 한, 역시 돌아가야 할 일상이 있기에 성립하는 것이다.
그런 와중에도 나름 공부해서 이탈리아어를 습득했다.
그건은 젊었단 그녀가 기 죽지 않고 활짝 열린 순수하고 뜨거운 마음으로 부딪쳐 흡수한 덕이다.
많은 사람들이 지나치게 깊이 생각하거나 자신감이 없어 우물쭈물하거나 좌절해서 좀처럼 그렇게 하지 못한다.
결국 그 순수함은 결실을 맺어, 일본으로 돌아온 그녀는 살이 쏙 빠졌고, 이탈리아어를 사용하는 일자리를 잇달아 얻었고, 시간을 두고 조금씩 연애의 아픈 기억에서 벗어나 멋지고 성숙한 여자가 되어 가고 있다.
당시 알게된 사람들과도 원만하게 친교를 이어 가고 있다.
그것은 젊은 시절에 이목을 과도하게 의식하기보다 하고 싶은 일에 도전하고 끊임없이 노력한, 열린 마음의 선물이다.
1년 사이에 그렇게까지 농밀한 시간을 지낸 사람은 달리 못 봤다.
처음 만났을 때, 언어 실력이며 행동력으로 봐서 틀림없이 5년 이상은 그 나라에 살았을 거라고 착각했을 정도였다.
그 다사다난했던 1년을 차분하게 돌이켜 얘기하는 지금의 그녀를 보면서, 자기 돈 들여 가는 외국인 것은 같아도, 내면에 있는 벽을 그저 쳐다만 보고 있는 것과 활짝 열린 마음으로 생활하는 것은 이렇게 다르구나, 하고 마음 깊이 느꼈다.
돌고래는 지능이 뛰어난 데다 신비로운 부분도 많고, 게다가 귀엽기까지한 동물이다.
봉제 인형이 아니다.
서로를 알려면 시간도 걸리고, 생활하는 공간이 다르니 배려도 해야 한다.
그런건 당연한 일인데 과도하게 정신적으로 기대하는 느낌, 그게 너무 싫었다.
"물으면야 대답은 하지만, 대개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거야, 이 세상 일은 어떻게 되든 별 상관없어. 좋은 의미에서." 하는 호탕한 분위기가 온몸에서 넘실거렸다.
길 열변을 토할 때에도 그 밝음과 기묘한 깊이는 변함없었다.
저렇게 멋진 할아버지가 있다니... 세상은 참 넓다.
'사람이란 목소리와 얼굴과 말투와 모습에서 그 사람의 인생이 전부 드러나는 법이구나.'하고 절실하게 생각했다.
"좀 귀찮고 힘든 일이 있어도 힘을 내서 여기저기 다니다 보면, 그 여행이 아무리 가혹한 것이었어도 나중에 남는 추억은 훨씬 더 멋있어진다. 이게 나의 철학입니다!"
기억의 마법은 끔찍하고, 그리고 또 멋지다.
친구의 철학에 한 표를 던진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다음 날부터, 한 모금 얻어 마신 마테차가 믿기지 않을 만큼 맛있게 느껴졋따.
아, 이런 차를 마시고 싶었어, 하면서 몸이 원하는 느낌마저 들었다.
그렇듯 강렬한 자연 속에서 살려면 그 정도로 파워가 넘치는 차를 마셔야 하는 것이리라.
그리고 일본으로 돌아와 마테차를 마실 때도 쓰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아, 엄청 진하게 해서도 맛있게 마실 수 있게 되었다.
정말 각별한 체험이었다.
벼랑 꼭대기에서 바람을 맞으며 한없이 펼쳐지는 새파란 지중해를 바라보는 것도, 파도가 거친 바다에서 헤엄을 치며 다양한 나라에서 온 할머니 할아버지와 미소를 나누는 것도, 부르스케타와 그냥 굽기만 한 새우가 이 세상 먹거리 같지 않을 만큼 최고로 맛있었던 것도, 잊을 수 없다.
그렇게 예정에 없었던,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것을 볼 때는 언제든 즐겁다.
옥시장에는 가게가 정말 많았다.
행운을 부르는 동물과 식물 모양의 조각품도 있고, 휴대 전화나 지갑에 매달 수 있게 알록달록한 끈이 달려 있기도 했다.
그야말로 온갖 옥이, 가짜와 진짜가 뒤섞인 상태에서 팔리고 있어 시끌벅적했다.
"그러니까 한동안 쉬게 하면 치유될 거야. 그런 다음에는 너를 위해 일할 거니까, 지금은 좀 쉬게 해 줘.:
그 말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그 돌에 숨겨진 이야기가 왠지 애처롭고, 긴긴 세월을 지나 내게로 왔다고 생각하자 애틋한 기분이 들었다.
'그냥 돌이지 뭐.'하고 생각하기보다, 갖가지 상상을 하며 소중하게 간직하는 편이 훨씬 즐겁다고 나는 생각한다.
시간을 두고 보면 조각들의 모양이 갖가지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파도에 쓸려 점차 동글동글 깎여, 사람이 품과 시간을 들여 줄로 갈아낸 것보다 훨씬 복잡하고 유려한 선을 그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