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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도 가끔은 엄마가 필요해>

Alice12 2023. 4. 23. 0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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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과의 연결고리인 엄마는 아이들에게는 등불이며 세상을 바라보는 거울 같은 존재로서, 모든 엄마들은 행복할 권리를 갖고 있다.
그러나 부모는 자식을 선택할 권한도 없고 그저 받아들여야 한다.
부모와 자식 관계도 서로가 있는 그대로 적응해야 하는 숙명적 관계일 뿐이다.
자식을 사랑하고 믿어주며 '하나의 존재'로 바라봐 주는 것이 건강한 자녀양육이고 육아의 핵심이다.
부모의 조건적 사랑이 아닌 있는 그대로의 사랑과 믿음을 경험하며 성장한 자녀가 자신의 삶을 건강하게 창조하며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엄마들은 자녀를 사랑하고 희생한 자신의 인생을 기억하지만, 자녀들은 부모에게 사랑받지 못한 결핍으로 오랜 시간 가슴앓이 하며 살아가는 경우가 의외로 많다.
이것은 부모가 자식이 원하는 사랑보다 부모가 원하는 사랑을 주었던 까닭이다.
현대인이 안고 있는 대부분의 정서적 문제는 사랑과 인정을 제대로 받지 못하여 생긴다.
따라서 이는 지속적인 사랑과 관심, 지지로 해결할 수 있는 것이다.
사실 많은 청소년들이 정서적 안정이 이루어지면 학업성적이 향상되고 비행을 멈추게 되는 경우가 많다.
그만큼 우리 내면의 평온은 세상을 살아가는 가장 소중한 자원인 것이다.
따라서 오랜 시간 동안 엄마 본인도 모르는 정서적 감옥의 문을 열고 내면의 상처를 치유해야 한다.
그것이 자식을 제대로 키울 수 있는 선결과제인 셈이다.
 
심진수 전인성장심리연구소 소장
 


아이에게 엄마는 세상의 전부이며 '믿는 구석'이다.
세상살이가 힘들 때 언제라도 기댈 수 있고 따뜻하게 덮을 수 있는 이불 같은 존재가 엄마이다.
 
스스로 의미 있는 꽃이 되기 위해서는 자신을 정성스레 비춰 줄 거울, 즉 타인을 필요로 한다.
정체성의 혼란을 겪는 청소년에게는 더욱 그러하다.
자신을 환하게 비춰 주는 따뜻한 어른을 만날 때 아이는 제 빛을 낼 수 있는 힘을 가지게 된다.
 
아이들은 꽃과 같다.
부모가 적당한 물과 양분과 빛만 제공하면 아이들은 스스로 꽃을 피울 수 있는 능력을 이미 가지고 있다.
그저 늘 같은 자리에서 따뜻하게 바라봐주고 양분을 주고 기다려주면, 언젠가는 아이가 자신만의 꽃을 피울 것이다.
<불량소녀 너를 응원해>에서 츠보타 선생님 말고도 주인공 사야카를 끝까지 믿어준 사람이 있다.
그것은 바로 그녀의 엄마다.
자신의 딸을 오로지 사고뭉치 문제아라고 치부해버렸던 아빠와는 다르게 엄마는 그녀의 가능성과 존재를 믿어주었다.
사야카가 터무니없는 공부실력에도 불구하고 "나도 시작하면 분명히 해낼 수 있을 거야."라고 끝까지 자신을 믿고 도전할 수 있었던 것은 엄마의 딸에 대한 무조건적인 믿음에서 시작되었을 것이다.
이처럼 엄마의 아이에 대한 믿음은 한 아이의 인생을 결정지을 만큼 강력한 힘이다.
 
자신의 분야에서 성공한 인물들 중에는 실제로 엄마의 믿음이 든든한 지지기반이 되어 꿈을 이룬 케이스가 많다.
아이에 대한 무조건적인 믿음은 아이가 잘해야 믿는 것이 아니라, 못하든 잘하든 존재 자체로 소중히 여기고 믿어 주는 것이다.
아이를 믿고, 있는 그대로 바라봐주자.
엄마의 믿음으로 자란 아이는 행복을 가슴속에 새기며 자신의 인생을 살아가게 될 것이다.
 
엄마로서의 이상적인 모습만을 꿈꾸며 잘하는 데만 집중하다보면 지금 내 앞에서 해맑게 웃고 있는 아이의 얼굴을 볼 수 없게 된다.
가장 중요한 지금 여기에서의 행복을 누리지 못하는 것이다.
'아이의 한 살은 엄마의 한 살'이라는 말을 잊지 말고 기억하자. 
우리 아이도, 엄마인 나도 조금씩 자라고 있다.
한 번에 모든 것을 완벽하게 할 수는 없다.
하나씩 하나씩 자신에게 부족한 부분을 채워가고, 성장해나가면 되는 것이다.
 
누군가가 나에게 "인생은 이렇게 사는 거야."라고 친절하게 알려주면 좋겠지만 그것을 일일이 알려주는 이는 없다.
오로지 내가 하나씩 알아가고, 개척해나가야 하는 것이 인생이다.
결국 삶은 각자가 스스로 고민해야 하는 과제다.
아이를 낳기 전에 삶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고, 그에 대한 자신만의 철학을 세운 사람이라면, 육아에서 오는 정신적 고통을 어느 정도 이겨낼 수 있을 것이다.
앞으로 어떻게 육아를 해나가야 할지에 대한 방향성이 정립되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신이 누군지,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전혀 고민해보지 않은 이는 육아를 시작함과 동시에 마음의 고통이 회오리처럼 휘몰아칠 것이다.
"아이와 엄마 중에 적어도 한 사람은 어른이어야 합니다."
아이가 어른이 될 수 없으니 엄마가 어른이 되어야 한다는 말인데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엄마들은 아직도 소녀다.
 
어른은 자신이 누리는 행복과 더불어 그에 대한 책임과 고통도 인내할 수 있어야 한다.
아이를 키우다보면 인내해야 하는 순간들이 참으로 많다.
인내는 하루아침에 배우는 것이 아니다.
경험과 고통의 시간들이 켜켜이 쌓여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고통을 인내할 때마다 마음에는 심리적 근력이 붙는다.
우리는 경험을 통해 배우고 성숙해진다.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지금 이 시간이 가장 빛나는 순간임을 망각한 채 산다.
행복은 머나먼 어느 미래의 일 같고, 나에게 오지 않는 일처럼 여겨지는 것이다.
하지만 행복은 그리 멀리 있거나 거창한 무엇이 아니다.
육아에는 빛과 어둠이 있기에 육아가 더 가치 있는 행위가 아닐까.
아이는 하늘이 주신 최고의 선물임에 틀림없다.
아이를 키우며 느끼는 무력감, 절망감 또한 내가 변화하기를 바라는 신의 선물일 것이다.
소녀인 나를 어른으로 성장하게 하고, 진정한 사랑이 무엇인지 알도록 해주는 기회 말이다.
지금 나에게 주어진 모든 행복과 고통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인내해보자.
그것을 선물로 받아들일 때 지금을 온전히 누릴 수 있는 마음을 얻게 될 것이다.
 
자신이 비록 지금은 잘 못하지만 앞으로는 잘할 것이고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고 누군가가 얘기해주고 믿어준다면, 더 잘하고 싶은 것이 우리 모두의 마음이다.
그리고 잘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누군가가 얘기해준다면 더욱 고마운 마음이 들 것이다.
엄마가 보기에 아이가 부족하고 더디더라도 아이를 진심으로 믿어주고 격려해주어야 한다.
그녀는 아이를 무조건적으로 믿어주고, 수용하는 엄마가 가장 좋은 엄마임을 이제야 알게 되었다고 한다.
엄마의 평가는 아이에게 결코 좋은 결과를 가져다주지 못한다.
아이는 엄마가 자신을 평가한대로 자신의 가치를 매기게 된다.
자신의 가치를 스스로 부여하는 것이 아니라, 타인의 평가로 정하는 것이다.
이것은 결국 낮은 자존감으로 이어진다.
자신의 아이가 타인의 눈치를 보지 않고 주체적으로 살아가길 원한다면 아이에 대한 질책과 평가를 내려놓고 아이가 가진 고유한 개성과 강점을 바라봐주자.
엄마의 무조건적 믿음이 아이로 하여금 자기 확신을 가지도록 한다.
자기 확신을 가진 아이는 사회에 나가서도 타인의 평가에 휘둘리지 않고, 주체적인 삶을 살게 될 것이다.
 
어른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은 없다고 믿는다.
하지만 어린왕자가 이야기한 것처럼 가장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마음으로 봐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어른들은 동심을 잃은 채 오랫동안 회색빛 세상에 길들여져 살았기 때문에 이것을 감지하는 게 어렵다.
하지만 아이들은 이러한 감각이 아직 살아 있는 것 같다.
떄로 아이들의 입에서 지혜의 말이 쏟아져 나오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육아는 잘하는 것이 아니다.
육아는 아이를 그저 있는 그대로 바라봐주고, 아이에게 필요한 것을 지원하는 일이다.
그리고 아이의 성향과 속도에 맞게 엄마 또한 완급 조절을 해야 한다.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은 늘 자신의 마음을 점검해보아야 한다.
다른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자신의 뛰어남을 뽐내기 위해 아이가 원하지 않는 것을 시키거나 다그치는 것은 아닌지 말이다.
모든 아이들은 각자의 고유한 개성과 특별함이 있고, 아이들 저마다의 발달속도가 다른데 사람들이 만든 틀 안에 아이를 집어넣어버리면 결국 아이는 제대로 할 줄 아는 것도 없고, 느리고, 뒤떨어지는 아이가 된다.
엄마는 아이를 '단 하나의 존재'로 바라봐주어야 한다.
아이가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지켜봐주고 따라가 주는 것이다.
엄마는 주변의 이야기에 흔들리면 안 된다.
그들이 하는 조언을 참고하되, 그것은 그들의 삶, 이건 나의 삶이라고 말할 수 있는 중심을 가져야 한다.
 
서로를 알아가고 이해하다보면 상대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된다.
사랑을 주는 것은 타인에 대한 진정한 관심과 배려에서 비롯된다.
많은 부모들이 흔히 자신이 살면서 부족했다고 생각하는 것을 아이에게 주는 우를 범한다.
따라서 엄마들은 아이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기 전에 유년기에 겪었던 자신의 상처를 먼저 치유해야 한다.
즉, 부모로부터 자신이 받고 싶었던 사랑이 무엇인지 기억을 떠올려보고, 자신의 좌절된 욕구가 무엇인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
유년 시절의 좌절된 욕구는 개인의 삶에 상처를 남긴다.
내 마음속에 듬성듬성 뚫린 구멍이 어디인지 찾아야 한다.
그것을 명확히 찾아내야만 어른이 된 내가 그 상처들을 정성스레 메우고 채울 수 있다.
이러한 엄마 치유 과정을 거치고 나면 우리 아이도 조금 더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된다.
당신의 마음속에 늘 당신에게 상처를 안겨준 부모나 당신을 괴롭히던 억눌린 욕구가 있다면 하나씩 그것들을 꺼내어 바라봐주자.
나에게 상처를 준 부모의 행동도 사실은 나를 위한 사랑이었을 수 있다.
다만, 그 방식이 서툴고 투박했던 것이다.
마음속의 부모를 용서하고, 그 시절의 나의 욕구에 귀기울여주자.
그떄 내가 부모로부터 받고 싶었던 것이 무엇이었는지, 나의 소망이 무엇이었는지 떠올려보자.
마음속의 상처받은 '내면 아이'를 어른이 된 내가 보듬어주고 돌보아주어야 한다.
이것은 결국 나를 어떠한 심리적 강박 상태로부터 자유롭게 해방시켜주는 방법이 될 것이다.
 
자존감이란, 말 그대로 자신을 존중하고 사랑하는 마음이다.
자신이 이만하면 괜찮다고 생각하는 느낌, 그리고 내가 타인으로부터 사랑받을 수 있는 존재라는 믿음이 자존감이다.
정신분석가 카렌 호나이는 이러한 자존감이야말로 한 인간이 평생 살아가고 행복감을 유지하게 해주는 힘의 원천이라고 하면서 자존감의 중요성에 대해 역설했다.
자존감은 한 개인이 평생을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마음의 뿌리 역할을 해주는 매우 중요한 요소다.
그리고 자존감은 대부분 어린 시절 가족관계 내에서 형성하게 된다.
가족 내에서 낮은 자존감을 형성한 아이는 나중에 성인이 되어서도 자신에 대한 부정적인 상을 가지고 타인으로부터 인정을 갈구하며 성취에 대한 극단적인 열망을 가지는 등 역기능적 행동으로 발전하게 된다.
따라서 엄마의 행동, 그리고 엄마의 표정은 아이가 자신의 상을 형성하는 데 있어 절대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럼 무엇부터 시작해보는 게 좋을까?
엄마로서 아이에게 반응해주고, 긍정적인 말을 해주는 것?
혹은 아이의 마음에 공감해주는 것?
어느 것이든 당신이 할 수 있는 것을 하면 된다.
나는 그 중에서도 엄마의 행복한 얼굴을 많이 보여주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아이들은 매우 민감한 존재이다.
늘 엄마의 표정을 바라보고, 엄마의 기분을 살핀다.
 
행복이 사실 거창한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행복을 먼데서 찾거나 나와는 관계없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행복은 일상의 찰나에서 오는 것이다.
아이가 어제보다 새로운 말을 하나 더 구사했다면 그것에 기뻐하고 신기해하는 것이 행복이고, 글씨를 못쓰던 아이가 자기 이름을 삐뚤삐뚤하게 쓰기 시작한 것 또한 감동이다.
남과 비교하며 나에게 없는 것에 집착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하루에도 수십 번씩 행복을 느낄 수 있다.
 
결국 행복이라는 것은 지금 내가 가진 것에 '감사'하는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이 세상 누구와도 바꿀 수 없는 우리 아이의 존재, 가계를 책임지고 있는 남편의 존재, 함께 마음을 나눌 수 있는 동료나 친구의 존재, 넉넉지 않아도 가끔은 맛있는 것을 사먹을 수 있고 따뜻하게 몸을 뉘일 수 있는 작은 보금자리의 존재에 감사할 수 있다면, 그것이 바로 행복인 것이다.
인간은 누구나 행복해질 수 있다.
지금 이 순간에서의 행복을 충분히 누릴 준비만 되어 있다면 말이다.
더욱이 앞서 말한 대로 엄마들은 우리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매일 행복해야만 한다.
아이들에게 행복한 엄마의 얼굴을 보여주고, 그들로 하여금 세상은 살 만한 곳임을 느끼도록 해주어야 한다.
그리고 아이 스스로 '나는 다른 사람들로부터 사랑받고, 스스로 행복해질 수 있는 존재구나.'라는 믿음으로 평생 살아가도록 엄마가 도와주어야 한다.
나는 세상의 모든 엄마들이 진심으로 행복해졌으면 좋겠다.
엄마라는 존재는 가정을 비추는 등불이며, 아이들이 세상을 바라보는 거울 같은 존재이기 때문이다.
 
아이를 키운다는 것은 인간이 할 수 있는 최대의 선(善)이며 강인한 인내를 강요하는 일이다.
매일 나를 내려놓아야 하며, 때로는 나 자신이 없어지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많은 엄마들이 아이를 키우며 나와 같은 느낌을 받아보았을 것이다.
아이를 키운다는 것은 원래의 내가 아닌 '새로운 나'로 살아가는 일이다.
전에 하지 않던 일을 하게 되고, 전에 하지 않던 생각을 하게 된다.
육아를 통해 엄마들은 자신이 몰랐던 '나'라는 존재에 대해 새롭게 알게 되고, 사람에 대해 배워간다.
내가 인식하지 못했던 나를 아이를 통해 만나게 되고, '진정한 나'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된다.
내가 구사하는 의사소통 방법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고, 그로 인해 상대가 느끼는 감정을 헤아려 보게 되기도 한다.
어떻게 하면 아이에게 적절하게 반응할지 고민하게 되고, 아이를 통해 만나는 관계들 속에서 무엇이 현명한 대처인지 생각하게 된다.
이것은 진정한 사람공부이며, 자기 자신에 대한 심도 깊은 이해다.
엄마 노릇을 하며 부딪히는 모든 어려움에는 분명 의미가 있다.
엄마 노릇은 보다 좋은 엄마, 보다 인격적으로 성숙한 사람이 되기 위해 주어진 소중한 기회이다.
나를 불편하고 신경 쓰도록 만드는 아이는 나를 괴롭히러 이 세상에 온 것이 아니라 엄마로서 한 단계 도약할 수 있도록, 엄마의 인격을 성장시키기 위해 하늘에서 보내 준 아이다.
엄마가 되고 나서 알게 된 것은 아이라는 존재가 나를 진정 '좋은 사람'으로 성장하도록 도와준다는 점이다.
엄마가 된다는 것은 약한 여자로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강인함 엄마로 거듭나는 기회를 얻는 것이다.
 
육아의 기쁨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을 만큼 크지만 개인이 감당하기에 녹록치 않은 일임에는 분명하다.
그녀가 엄마에게 느낀 서운한 마음도 당연히 누구나 가질 수 있는 자연스러운 감정이고, 나 역시 그녀의 입장이었다면 그런 마음이 들었을 것이다.
정신분석학자 도널드 위니캇은 모성은 자신의 엄마로부터 배운다고 말했다.
모든 엄마는 아이를 키우는 데 있어서 그녀의 엄마가 그녀를 양육했던 방식으로 키운다는 말이다.
물론 많은 엄마들이 자신의 아이는 절대 자신이 키워진 방식대로 키우지 않겠다고 선언한다.
하지만 우리의 무의식에는 이미 엄마로부터 받은 양육방식이 뿌리깊이 내재되어 있다.
그래서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이 자기도 모르게 부모의 방식을 자신의 아이에게 답습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 고리를 끊어낼 방법은 결코 없는 것일까?
나는 있다고 확신한다.
무의식 속에 잠재된 정보까지 모두 없앨 수는 없겠지만 엄마들이 의식적으로 노력하고 실행에 옮기면 충분히 가능하다.
나는 실제로 그것을 실천하고 있다.
어떤 부모든 아이를 키우는 데 있어서 원 부모로부터 받은 양육 방식의 30%라도 개선하고자 노력한다면 그것은 대성공이다.
완전히 바꾸는 것은 쉽지 않을 뿐더러 단번에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엄마로서 아이에게 채워주지 못한 부분은 아빠가, 아이 스스로, 혹은 사회가 채워줄 것이라 믿어보자.
그렇게 생각하면 조금은 마음이 홀가분해진다.
이 세상에 완벽한 엄마는 아무도 없다.
어제보다 조금 나은 모습, 아이에게 따뜻한 모습으로 다가가기 위해 노력하는 엄마라면 그것도 충분하다.
 
우리 모두는 이미 알고 있다.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이 가장 자연스럽고 나답다는 것.
그리고 내 앞의 상대 또한 내가 나 아닌 다른 사람처럼 행동할 때 도리어 거부감을 가지고 불편해 한다는 것을.
우리 아이들 앞에서도 마찬가지다.
엄마는 엄마 노릇이 처음이다.
따라서 부족한 면을 솔직하게 인정하고 내가 할 수 있는 선에서 최선을 다 할 때 아이는 오히려 엄마를 더 편하게 여기고 교감할 것이다.
아이를 잘 키워야 한다는 강박관념에서 잠시 벗어나, 아이와 함께 이완된 상태로 이 순간을 살아가는 것이 오히려 아이에게도, 엄마에게도 이로울 수 있다.
아이도, 나도 부족한 존재다.
그것을 인정하는 것이 엄마들이 해야 할 첫 번째 일이다.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을 인정하고, 아이를 사랑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믿자.
아이는 많은 것을 바라지 않는다.
그저 자신을 편안하게 사랑해주는 엄마가 아이에게는 최고의 엄마다.
 
사랑이 힘든 사람들이 있다.
혹은 연애가 힘든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면 자신을 잃은 채 상대에게 몰두한다.
이것은 무의식적으로 일어나는 일이라 스스로 마음을 제어하는 게 쉽지 않다.
마음속을 사랑하는 상대로만 가득 채워서 '내가 없는' 느낌을 갖게 되는 것이다.
사실은 그가 나를 충분히 사랑하지 않아서 힘든 것이 아니라 내가 없어지는 그 느낌이 고통스러워서 사랑이 힘든 것이다.
'너무 사랑하는 여자들'은 상대보다 나 자신에게 잔뜩 화가 난 것인지도 모른다.
이들은 왜 자기 자신을 잃으면서까지 누군가를 마음속에 가득 채우는 것일까?
인격이 형성되는 가장 중요한 시기인 만 3세 이전에 '이 정도면 나는 충분히 사랑받는 사람이야'라는 느낌을 가져야 한다.
그러한 느낌을 갖는 데 결정적 영향을 미치는 사람은 바로 엄마다.
아이는 엄마를 바라보며 자신을 인식하고, 자신이 사랑을 받고 있는지 끊임없이 확인한다.
엄마가 아이를 충분히 따뜻하게 바라봐주고, '너는 소중한 존재야'라는 마음을 느끼게 해준다면 아이는 엄마의 사랑을 가슴속에 새기며 긍정적인 자기상을 가지게 된다.
이것이 자존감인 것이다.
자존감은 자신을 존중하고 가치 있다고 여기는 마음이다.
 
정말 온전히 자기 자신을 믿어주고 사랑해주어야 하는 것은 자기 자신밖에 없다.
나를 사랑하는 방법은 참 쉬운 것 같으면서도 어렵다.
첫째, 자신에 대해 깊이 이해하기
둘째, 내가 좋아하는 것을 나에게 대접하기
셋째, 끊임없이 자신에게 긍정적 메시지를 전하기
 
자기 이해의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나의 경우에는 나를 잘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심리학책을 많이 읽었다.
책은 최고의 선생님이다.
주변에 마음을 털어놓을 친구가 없다면 좋은 책과의 조우를 해보길 바란다.
오히려 누군가와 대화할 때보다 더 많은 통찰을 얻기도 한다.
또한, 만약 당신이 경제적, 시간적으로 여유가 있다면 심리 상담을 받아보는 것을 권한다.
상담을 통해 나는 매 회기마다 알지 못했던 나를 새롭게 알게 되고, 어두움 속에 가려진 나를 만났다.
그 과정은 정말 힘들지만 '어두웠던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때 비로소 마음속의 상처가 치유된다.
개인의 성장은 심리적 치유가 이루어질 때 일어나는 것이다.
 
만약 내가 좋아하는 것을 잘 모른다면 먼저 첫 번째 단계인 자기이해를 충분히 해야 한다.
그러다 보면 하나씩 발견하게 될 것이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노트에 적어보는 방법도 효과적이다.
막연하지만 나를 기쁘게 하는 것들의 리스트를 작성해 보아라.
그러다 보면 내가 좋아하는 것들의 리스트가 나오는데, 그것들을 매일 하나씩 나에게 해주는 것이다.
마치 타인을 대하듯 자신을 대접해야 한다.
나를 대접하는 것이 아직 익숙하지 않아 어려울 수 있찌만 습관화되면 자연스럽게 몸에 밴다.
사랑하는 아이를 대하듯, 혹은 내 집을 방문한 반가운 손님을 대하듯 나를 대하면 되는 것이다.
 
나에게 나를 기분 좋게 하고, 나를 격려하고, 나에게 용기를 주는 메지를 주는 것이다.
긍정 메시지 전달하기는 가급적 아침에 눈 뜨자마자 시작해서, 잠들 때까지 지속적으로 해주는 것이 좋다.
나는 하루에도 수십 번씩 긍정의 메시지를 나에게 전한다.
"행복해지려면 행복한 척을 백 번 해라. 그러면 정말 행복해진다."
자신을 사랑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자신을 사랑한다는 메시지를 백 번만 전하면 나중에는 자신을 정말로 사랑하게 되는 것이다.
나를 사랑하는 데 있어 죄책감을 느낄 필요는 없다.
남편도, 아이도 당신이 행복해지길 원하고 있고, 당신이 스스로를 사랑하기를 원한다.
그동안 방치해왔던 자신을 좀 더 봐주고 예뻐해 주자. 
당신은 너무 소중한 사람이니까.
 
여자는 사랑하고 사랑받기를 원한다.
그것은 모든 인간이 가지고 있는 기본적인 욕구다.
하지만 여자라는 존재는 그 욕구가 남자보다 강한 것 같다.
이들은 누군가를 위해 정성을 쏟고,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줄 정도로 사랑에 올인한다.
이 책을 읽는 독자들도 결혼하기 전 누군가를 가슴 사무치도록 사랑하고 미워하고, 헤어져본 적이 있을 것이다.
사랑은 그 자체만으로 열정적인 감정이고 사람을 살아가도록 하는 에너지다.
우리가 그토록 누군가를 사랑하는 이유는 우리 자신이 살아가기 위해서일지 모른다.
사랑하지 않으면 살 수 없으므로 에너지를 쏟을 만한 대상이 필요한 것이다.
그것이 여자의 인생에서는 연인에서 배우자로, 배우자에서 자녀로 이어진다.
 
사랑에 쉽게 빠지고 상처 입는 여자들은 상대의 행동이나 생각을 바꾸기 위해 여러 가지 방법들을 동원한다.
그녀들의 관심사는 오로지 상대방으로부터 사랑을 받는 데 있다.
상대를 통제하고 싶은 욕구 때문에 그녀들은 현실을 제대로 바라보지 못하고 이상을 바라보며 사랑을 키워간다.
이렇게 너무 사랑하는 증상은 집착이 되고, 집착은 이별을 부른다.
그래서 그녀들은 늘 상처받는다.
진정한 사랑은 상대에 대한 지나친 구속이 아닌 인정에서 비롯된다.
이들을 모두 '사랑 중독'이라 규정짓기는 어렵지만 아이에게 자신의 모든 에너지를 집중하고 아이를 통제하려고 하는 엄마들의 내면에 '자기 자신'이 없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들은 마음속에 '자아'가 없이 어떤 대상을 향해 끊임없는 사랑의 에너지를 쏟는다.
이것은 무의식적인 과정이라 부지불식간에 일어나며 이것을 인식하는데 많은 시간이 걸린다.
<너무 사랑하는 여자들>에서 저자는 이러한 사랑 중독의 원인을 정서적 욕구가 채워지지 않은 유년시절의 가정환경으로 설명하고 있다.
이성에게 집착하거나 동시에 여러 명의 이성을 만나는 여성들, 혹은 아이에게 과도한 집착을 해서 부모 자녀간의 관계를 그르치는 엄마들을 만나면서, 그들이 어린 시절에 겪은 모성결핍과 정서적 허기를 발견할 수 있었다.
은주 씨는 자신의 정서적 허기를 이성과의 만남을 통해 채우려고 했고, 동시에 여러 남자와 만나고 헤어지기를 반복했다.
첫 만남에서 남자들이 보이는 애정 어린 관심은 그녀를 황홀경에 빠지게 했고, 자신이 사랑받고 있다는 정서적 충만감을 느끼게 해주었다.
하지만 만남이 지속될수록 그녀의 허기는 채워지지 않고 더욱 고통스러워졌다.
남녀관계는 처음부터 불꽃이 튀는 것이 아니다.
서로를 알아가며 결국은 각자 자기생활로 돌아오게 되는데 그녀는 계속해서 자신만 바라봐주고 관심을 쏟아주는 절대적인 존재를 원했던 것이다.
그녀 또한 자신의 문제를 인식하고 있었지만 그것이 쉽게 바뀌지는 않았다.
유년시절의 정서적 허기는 은주 씨의 사례처럼 이성과의 만남으로 나타나기도 하지만 섭식장애로 드러나기도 한다.
따라서 엄마들은 아이에게 쏟는 정성과 사랑이 엄마의 정서적 결핍에서 비롯된 것은 아닌지 스스로의 마음을 들여다보아야 한다.
만약 아이를 통해 상처받은 마음을 치유하고 애정을 채우려고 한다면 그것을 직시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 자신의 결핍된 욕구를 계속 아이를 통해 채우려 하다보면, 종국에는 아이를 통제하려 들게 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엄마들의 심리적 결핍은 타인에 대한 인정욕구와 결탁하여 '육아를 잘하는 것'에 집착하는 육아중독으로 발전하기도 한다.
다시 말해, 아이를 너무 사랑해서 잘해주고 육아에 몰입하는 것이 아니라, 사실은 엄마 자신이 타인으로부터 인정받고 싶고 자신의 존재가치를 느끼기 위해서 육아에 집착하게 되는 것이다.
좋은 엄마가 되어야 한다는 강박적 생각도 마찬가지다.
아이를 사랑한다는 미명 아래 했던 엄마의 행동들이 사실은 자신의 결핍된 유아기적 욕구에서 비롯된 것임을 많은 시간이 흐른 뒤에야 알아차리게 된다.
 
진정한 사랑은 서로의 차이를 존중함으로써 둘의 관계를 통해 더 창의적이고 생산적인 방향으로 바꿀 수 있어야 한다.
어느 한쪽도 상처입거나 괴로워서는 안 된다.
누군가를 사랑하면서 동시에 자신을 지키고 자신의 일을 창의적으로 해나갈 수 있는 사람만이 진정으로 타인을 사랑할 수 있다.
 
우리는 누군가의 압박이 아닌 스스로에 의한 동기부여를 통해 자신의 꿈을 이루었을 때 그 결과에 대해 더욱 소중하게, 가치 있게 여긴다.
아이 스스로 자신의 가치를 만들어나가고 자기답게 행복을 누릴 수 있도록 기회를 주자.
 
아이에 대한 존경(Respect)
 
정작 중요한 것은 아이를 믿어주고 존경하는 시선으로 바라보아야 한다.
우리는 흔히 누군가를 존경한다고 하면 그 대상이 반드시 우리보다 지위가 높은 선생님이나 부모님 같은 존재여야만 한다고 생각할 때가 많은데 사실 그렇지 않다.
우리가 만나는 모든 대상은 우리가 진심으로 존경해야 할 존재다.
에리히 프롬은 '존경'에 대한 정의를 다음과 같이 내리고 있다.
"존경이란 인간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고, 그 사람이 유일무이한 존재임을 아는 능력이며, 그 사람이 그 사람답게 성장하고 발전할 수 있게 배려하는 것이다."
우리가 이제껏 생각해온 존경에 대한 개념과는 사뭇 다른 정의다.
결국은 엄마도 아이를 기꺼이 존경하는 마음으로 바라보아야 아이가 잘 살아갈 수 있다는 말이다.
 
엄마 마음의 여유(Relax)
육아는 기나긴 마라톤이다.
아이를 끊임없이 기다려주어야 하고, 엄마 자신을 계속해서 성장시켜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엄마는 자신을 소중히 여기며 정신적으로 소진되지 않도록 스스로를 돌보아야 한다.
한 생명을 돌보는 일은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매우 소진되는 일이다.
따라서 엄마 자신을 돌보는 일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엄마의 마음에 여유가 생겨야 아이를 사랑스러운 눈으로 바라봐줄 수 있다.
그렇지 않고 육아에만 몰두하며 자신을 돌아보지 않으면 몸도 마음도 지치는 번아웃증후군을 겪게 되기도 한다.
엄마가 스스로를 위해 시간을 투자하고 마음에 여유를 가지는 것은 이기적인 것이 아니라 자신을 돌보는 행위이며 나아가 가족 모두를 살리는 길이다.
엄마라는 존재는 가정의 중심축이며, 엄마의 정서는 가족 전체의 분위기를 좌우할 만큼 중요하다.
나만의 시간을 가진다는 것은 엄마로서 그리고 아내로서의 책임과 의무를 내려놓고 온전히 자신을 돌보는 행위이다.
육아로 인해 찌든 나의 몸과 마음을 돌보고 치유하는 것이다.
내가 힘이 있어야 누군가를 진심으로 도울 수 있다.
아이를 키우는 것도 마찬가지다.
 
엄마의 자각(Realize)
육아를 하며 가장 힘든 것 중 하나는 엄마 본인도 모르고 있던 자신의 밑바닥을 봐야 하는 순간이 온다는 것이다.
아이를 키우다보면 엄마의 어릴 적 해결되지 않은 '내면 아이'가 건드려지는 순간이 온다.
나 또한 육아를 하며 처음에는 아이의 문제가 그저 아이의 문제인 줄만 알았는데, 알고 보니 내 문제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우연한 기회에 깨닫게 되었다.
그러나 엄마들이 이 사실을 자각하였다면 반은 성공한 것이다.
<좋은 부모의 시작은 자기치유다>의 저자 비벌리 엔젤은 엄마가 자신의 유년시절에 대해, 그리고 현재의 모습에 대해 진실을 자각하고 나면 그 진실을 자존감의 회복을 위해 쓸 수 있다고 말했다.
왜냐하면 진정한 치유라는 것은, 내가 어떠한 신체적, 정신적 고통 아래 오랫동안 괴로워하며 지냈는지를 밝혀내어 그 진실을 직시한 뒤, 그것을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일어나기 때문이다.
유년시절의 상처 입은 마음으로 아이를 바라보게 되면, 아이를 객관적으로 볼 수 없고 진정한 관계를 맺는 것이 힘들다.
이럴 때일수록 엄마는 자신의 내면을 자각하고 이를 치유할 용기가 필요하다.
자신의 상처받은 내면 아이를 치유하고, 마음이 건강해진 엄마만이 아이를 편안하게 사랑할 수 있다.
 
앞서 이야기한 세 가지, 즉 아이에 대한 존경, 엄마 마음의 여유, 자신의 문제를 자각하는 마음으로 아이를 키운다면, 어떤 경우라도 슬기롭게 육아의 난관을 헤쳐나갈 수 있을 것이다.
결국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객관적 시각으로 자신의 아이를 바라보고, 있는 그대로 존중하는 것이 아이도, 엄마도 행복해지는 육아의 비법이다.
 
엄마 사랑해요 ~
 
출처: <엄마도 가끔은 엄마가 필요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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