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라본 후에 다스리는 마음> 4
명상은 매 순간을 충만하게 누리게 해 주고 그럴 수 있는 방법들을 제안한다.
그렇다고 해서 영원한 쾌락을 누릴 수 있다는 착각에 빠져서는 안 된다.
명상은 쾌락의 절제가 아니라 쾌락을 기대하는 마음에 대한 절제다.
무언가를 기대한다는 것은 그 자체로 고통의 근원이기 때문이다.
기대 심리는 표적을 찾지 못하고 방황하는 희망 속에 현실을 가두고, 실제 대상과 우리의 바람 사이에 더욱 깊은 늪을 만든다.
"무슨 일이든 너희가 원하는 대로 되게 하려 애쓰지 말고, 그저 일어나는 대로 놓아두라. 그러면 행복해질 것이다."
산스크리트어로 '고통'을 뜻하는 두카(dukkha)는 인간의 관점이 사물의 자연스러운 과정과 더 이상 어우러지지 않을 때 느끼는 절망 상태를 묘사하는 말이다.
이때 무상함에 대한 명상 훈련은 인간이 재현한 현실과 있는 그대로의 현실 사이의 거리를 줄이는 데 도움을 준다.
이 명상은 변화, 이별 그리고 상실에서 오는 고통을 덜어 주진 못하겠지만, 적어도 다른 고통을 더해 주지는 않는다는 장점이 있다.
행복은 기대하지도 기다리지도 않을 때 얻어진다는 것.
유쾌하거나 불쾌하거나 이도 저도 아닌 일 등을 전부 겸허히 받아들일 준비가 되었을 때 우리의 경험이나 자세 또한 유연해진다.
조건 없는 열림의 상태.
...
명상하는 사람은 이런저런 생각을 머릿속에서 지우려고 애쓰지 않는다.
다만 거기에 의존하지 않으려 할 뿐이다.
우리의 마음이란 움직이는 모든 것(욕망, 의견, 각종 이야기 등)을 뒤쫓는다는 사실을 잘 알게 된 이상, 그리고 안정적인 관심이나 협조적인 마음 상태를 더 기대하지 않는 이상, 이제 전과 같은 방식으로 자기 생각을 바라보지는 않는다.
마치 한 편의 연극을 감상하듯 살아있는 자기 마음을 가만히 응시할 뿐이다.
자기 숨결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만이 존재의 회복을 가져오는 건 아니다.
나타났다 사라지곤 하는 생각들을 붙들어 두지 않고 가만히 관찰하는 일 또한 중요하다.
마음이 끓어오르는 순간이 어제인지 알아차리는 것은 새로운 자세다.
...
일단 생각을 인지한 관찰자는 거기서 멈추지 않는다.
관심이 무엇인가에 따라 생각을 거른 다음, 걸러진 생각들에 대한 연구와 조사를 시작한다.
그런데 의식과 그것의 형성이 서로 만나는 순간 생각은 사라진다.
주의의 바늘에 찔리기라도 한 듯 생각의 비눗방울이 팡 터져버린다.
이런 과정을 전통 불교에서는 눈송이가 따뜻한 지면에 닿는 순간으로 묘사한다.
어떤 사물이 관찰되는 찰나의 순간, 다시 말하면 관찰자의 인식에 닿는 그 순간, 생각은 자연스럽게 녹아 사라진다.
...
고찰의 과정은 더 멀리 나아간다.
명상이 생각의 근원으로 돌아가게 하는 것이라면 이제부터는 생각의 관찰자 또한 질문의 대상이 된다.
이제 관찰하는 사람이 관찰의 대상이 된다.
당신 시선의 근원에 서 있는 이 '나'는 도대체 누구인가?
명상 수행자는 정체성을 미세하게 나누어 기원을 찾고자 의식으로 향하지만, 결국 의식의 주인이 누구인지 알아내지 못한다.
의식은 어디에나 있고 어디에도 없기 때문이다.
몸 안에도, 밖에도 없다.
시작도 끝도 없다.
고정된 윤곽선을 가진 '나'는 사상가를 자처하는 그 누구의 눈에도 띄지 않는다.
본질적으로 텅 비어 있는 그의 생각처럼 생각을 관찰하는 이의 정체성도 허공에 흩어진다.
...
생각이란 들숨과 날숨처럼 자연스러운 것이므로 우리는 더 이상 자기 생각을 억누르거나 제거하려 하지 않는다.
우리는 생각의 산만한 기복 앞에서 놀라는 법이 없다.
한 발짝 뒤로 물러서듯 끊임없는 파동을 전체적으로 바라본다.
우리의 생각은 곧 의식의 뇌전도다.
마음의 형태는 다른 형태들도 알게 될 것이다.
우리는 방해받지 않으면서 마음이 모든 종류의 파도를 지나갈 수 있돌고 가만히 내버려 둔다.
물론 생각의 강물은 계속해서 흐르지만, 주의의 관점에서 본다면 생각들은 우리를 차분하게 만든다.
평온은 이제 더 이상 정신적 침묵의 개념이 아니라 세상의 소음에 대한 완벽한 수용이다.
평온은 생각의 소멸이 아니라 생각에 집착하지 않는 상태다.
생각이 이미 자연스럽게 비어 있는 상태라는 걸 알고 있으므로 더 비워 내려고 발버둥 칠 필요가 없다.
이제 우리에게는 모든 종류의 즉흥적 산물이 스쳐 지나가는 의식이 된 것만 같은 매우 특별한 느낌이 남는다.
안정성은 동작의 정지가 아니라 모든 동작을 온전히 수용하는 상태를 의미하게 된다.
어떤 내용을 담고 있든 생각은 움직임의 자유로운 표현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