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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비투스의 힘> 여덟 번째 힘

Alice12 2025. 3. 9. 1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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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덟 번째 힘 사회적 역할을 감당하는 이중 아비투스

 

부유하든 그렇지 않든 어느 가정에서나 발견되는 공통점이 있다.

부모의 형편과 상관없이 자녀들은 자기만의 길을 간다는 점이다.

 

한번 이룬 도약을 세대에 걸쳐 전승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세상의 이치다.

조상이 애써 도달한 사회적 지위에서 성과를 쌓기 시작하는 후손들은 별일이 없는 한 그 높이를 그대로 유지한다.

다만 도약으로 펼쳐진 새로운 상황에 모두가 안착하지는 못한다.

도약으로 새로운 사회적 지위를 성취한 가정의 자녀들이 자라면서 부모와 집안 어른들로부터 자주 듣는 소리가 있다.

"네가 어디서 왔는지를 잊지 말거라."

자녀가 도약하길 간절히 바라며 그래서 온 힘을 다해 도울 것이란 뜻이다.

동시에 이 말에는 부모의 마음 한구석에 깃든 염려도 숨어 있다.

 

처음부터 높은 지위에서 시작한 아이들과 달리 도약으로 올라간 아이들에겐 기존의 세계를 떨쳐야만 하는 숙제가 있다.

그들은 새로운 길을 따라 새로운 지평을 열고 새로운 사람들을 알아가며 새로운 주제와 영역에서 일하게 되는데, 그들의 부모는 그 새로움이 낯설고 때론 수상하기까지 하다.

이 작은 틈은 시간이 갈수록 벌어져 어느새 커다란 골짜기가 된다.

부모와 자식이 그 간극을 넘어 관계를 유지하려면 서로 엄청난 이해심을 발휘해야 한다.

물질적 차이보다는 문화적 차이가 훨씬 극복하기 힘들다.

하지만 분위기가 좋은 집에선 그런 차이들을 웃어넘길 수 있고 서로를 인정하는 계기가 되며, 오히려 좋은 이야깃거리가 되기도 한다.

달라도 가족이기에 정서적으로 가깝게 지내고, 서로의 오랜 경험과 새로운 발견을 흥미롭게 여기며, 서로 약간씩 혹은 엄청나게 다를 수 있다는 사실을 순순히 받아들인다.

이런 태도는 인간적 성숙의 증표이자 상호존중의 신호다.

부모가 도약을 시도하는 자녀를 보며 "잘할 수 있어!"라며 응원하고 도약을 성취한 후엔 "정말 멋지다!"라고 인정할 때 소득수준이나 취향의 차이는 가족 간의 유대를 더욱 끈끈하게 만든다.

 

사회적 도약이 교육을 통해 일어난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사례는 차고 넘친다.

이 말인즉슨 당신의 소득이 부모님을 능가하지 않을 때조차도 당신은 문화적으로 부모님과 전혀 다른 세계를 살아갈 수 있다는 뜻이다.

"가족 공통의 화제, 관심사, 가치가 사라진다. 생활환경과 생활 방식은 점점 달라진다."

남들보다 두각을 드러낸다고 해서 오만한 것은 아니다.

그건 그저 원가족이 태클을 걸려고 하는 말이다.

앞길을 스스로 개척하는 사람은 엄청난 변화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

원가족의 사고방식과 행동양식도 넘어서야 한다.

하지만 도약을 꿈꾸는 사람들은 기존의 결속과 새로운 관계가 함께 가길 원한다.

 

다행히 그런 시절을 통과한 후 우리는 두 세계의 균형을 우아하게 조절하는 법을 배운다.

하지만 뿌리에서 멀어진 길을 돌아갈 수는 없다.

도약자들은 모두 그 거리감 때문에 힘들어 한다.

홀로 고통을 감내하느라 겉으로 드러나지 않을 뿐이다.

그렇지만 나무와 마찬가지로 사람도 뿌리가 잘리면 힘을 쓰지 못한다.

그래서 나는 가족 간에 찰떡궁합까지 바라진 않더라도 마음의 문을 열고 기다려줄 필요는 있다고 생각한다.

어쨌든 원가족이야말로 우리가 제일 사랑하고 우리의 인생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사람들이지 않은가.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먼저 객관적인 입장에서 관찰해보자.

당신에게 일어난 일은 무엇인가?

당신은 열심히 일했고 차근차근 앞으로 나아가 상위계층의 코드를 배우고 익혔다.

패션부터 음악, 인테리어, 전기차에 이르기까지 주변과 어울리는 취향이라면 가리지 않고 섭렵했다.

당신은 어떤 계기로 원가족과 돌이킬 수 없는 격차를 확인했다.

무엇이 되었든 차이는 분명했고 어쩌면 그 간격이 어마어마하게 넓어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당신이 다리가 된다면 아무리 멀다 해도 그 간격은 다시 이어질 수 있다.

 

잠시 당신이 다른 나라에 살고 있다고 상상해보자.

당신은 그 나라의 언어에 통달했고 그 나라의 예법도 몸에 익어서 이제는 어떤 상황이 닥쳐도 완벽하게 대처할 자신이 있다.

그렇다고 당신이 모국어를 잊었을까?

아니다.

고향에 돌아오면 금방 모국어 실력이 되살아날 것이다.

 

마찬가지로 도약으로 새로운 아비투스를 익힌 사람은 두 개의 아비투스를 동시에 갖고 있다.

피에르 부르디외는 한 사람이 여러 가지 아비투스를 경험한 것을 두고 '쪼개진 아비투스'라고 부른다.

'태생적 나'와 '현재의 나' 사이를 오락가락하다 보니 여기에도 저기에도 안 맞는 어중간한 아비투스가 생겼다는 의미로 들린다.

하지만 이 상황을 다른 방식으로 해석해보면 어떨까?

우리의 이중 아비투스가 우리의 내면을 쪼갠다고 생각하는 대신, 사회적으로 두 가지 역할을 감당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고 생각해보는 것이다.

우리가 여러 언어를 동시에 구사할 수 있다면 여러 사회계층 사이를 오갈 수도 있는 것 아닐까?

그렇다면 우리의 태생적 아비투스와 성취된 아비투스는 양립 불가능한 배타적 속성이라기보다는 한 인격이 지닌 두 가지 스타일로 풀이될 수 있을 것이다.

 

이 생각을 받아들이면 '쪼개진 아비투스'에 숨은 커다란 장점이 보이기 시작한다.

삶은 당신이 태생적 아비투스와 후천적으로 성취한 현재의 아비투스 사이를 자유자재로 오갈 수 있는 능력을 키워주었다.

물론 계속 오가는 건 번거로운 일이고 때론 착오가 생길 수 있다는 점은 인정한다.

하지만 이중 아비투스는 당신의 태생을 받아들이고 다양한 사람들을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된다.

그리고 무엇보다 원가족과의 관계를 계속 유지하기 위해선 이중 아비투스가 꼭 필요하다.

부모나 형제자매가 당신의 관심사나 생각을 따라오지 못할 수도 있다.

그래도 괜찮다.

당신이 그들을 따라갈 수 있으니.

 

적극적으로 주변을 보살피려는 자세가 필요하다.

성공했어도 뿌리를 잊지 않았다는 사실을 증명해 보여야 한다.

외국인을 만나면 외국어를 하듯 언제라도 예전의 세계로 들어갈 채비가 돼 있어야 한다.

 

그들은 적극적으로 원가족과 친밀감을 유지하고 가족의 분위기를 긍정적으로 이끄는 책임을 기꺼이 도맡는다.

어떻게 해야 가족이 갈등 없이 편안하게 어울릴 수 있을까?

어떤 주제와 의견을 내놓아야 공감을 얻을까?

가족을 결속시키거나 분열시키는 태도와 계획은 무엇일까?

우리가 서로 다르긴 해도 여전히 친밀하다는 기분을 느끼게 하려면 어떻게 처신해야 할까?

이런 질문들을 하며 끊임없이 고민한다.

물론 얼마나 많은 것을 이루었는지 가족에게 증명하고 싶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원가족은 자기 삶의 울타리에 갇힌 나머지 자녀의 성취를 제대로 인정하지 않을 때가 많다.

부모의 인정을 간절히 원했던 당신은 상처를 받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넓은 관점으로 상황을 바라보고 관대하게 마음을 먹자.

가족의 아비투스는 한 겹이지만 당신의 아비투스는 두 겹이다.

이중 아비투스를 통해 다른 사람에겐 없는 가능성을 키워라.

 

사회적 도약을 이룬 사람이 여전히 가족과 안정적으로 연락을 하고 지낸다면 그것만으로도 대단한 일이다.

하지만 여전히 채워지지 않은 바람도 있다.

아마도 당신은 새로운 삶의 더 많은 부분을 가족들과 공유하고 싶을지도 모른다.
만일 당신이 원가족의 존경을 얻을 만한 성과를 이룬다면 그런 일은 충분히 현실이 될 수 있다.

당신의 가슴속에 고이 간직한 이상적인 가족의 모습을 실현할 수 있다는 뜻이다.

단 혼자 힘으로는 안 된다.

 

'양쪽 모두가 새로운 환경에 대처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자녀가 이룬 사회적 지위에 부모가 함께한다면 가족 내 지위 구조에도 변화가 생긴다.

자녀들은 가족의 리더 역할을 맡아 부모가 더 높은 수준에 이를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돕는다.

재정적 지원은 물론이고 자신의 세계를 공유할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을 찾는 것도 자녀의 몫이다.

 

출생으로 얻은 가족은 우리의 사회적 지표다.

당신도 나이와 성과가 아닌 오로지 가정환경에 따라 평가받은 경험이 한 번쯤은 있을 것이다.

그리고 도약으로 높은 지위에 오른 사람일수록 자신의 가정환경이 '부적절하다'라는 생각에 시달린다.

당신은 가끔 출신배경을 미화하고 싶다는 욕망을 느낀다.

하지만 그럴수록 더 당당하게 상황을 돌파해야 한다.

만약 가족이 당신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싶어 한다는 확신이 든다면 그때는 가정 안에서 변화를 도모해보는 것도 좋다.

먼저 다양한 생활 방식과 경험에 대해, 어디서 차이가 발생하는지에 대해, 당신이 지금 속해 있는 계층의 사람들은 어떻게 의사소통을 하는지에 대해 허심탄회한 이야기를 나눠라.

당신이 먼저 고민을 털어놓는다면 가족들도 신중하게 받아들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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