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라우마 테라피> - 간섭과 통제의 상처 치유

2023. 4. 16. 12:20Book

728x90
반응형
BIG

간섭과 통제의 상처엔 어떤 심리구조가 깃들어 있을까?

 

자유를 박탈당하고 간섭을 받게 되었을 때 사람은 비로소 자유의 가치를 알게 된다.

자유를 빼앗는 대상은 국가일 수도 있고 직장상사나 가족일 수도 있다.

특히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간섭하고 통제하고 구속할 때 그 고통을 해결하기란 쉽지 않다.

화해와 용서라는 알량한 감상으로는 해결이 안 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실제로 사사건건 대신 결정하고 간섭하는 가족 때문에 성인이 되어서도 고통받는 사람들이 많다.

우리나라의 대단한 사교육열도 사실은 간섭과 통제현상이라고 볼 수 있다.

사교육을 통해 부모들은 아이들의 성공이 아이들의 타고난 재능 때문이 아니라 자신들의 노력 덕분이라는 생각을 합리화한다.

따라서 나중에 아이들이 성인이 되어 부모를 능가하는 판단력을 가지고 자신의 인생을 결정하려고 할 때도 결코 간섭을 그만두지 않는다.

자식이 성공한 것은 자식이 잘해서가 아니라 부모가 막대한 경제적 희생을 하면서 사교육을 시킨 덕분이라는 명분을 내세우는 것이다.

그래서 결혼도 부모가 원하는 상대와 하도록 통제한다.

그리고 결혼한 후에도 끊임없이 부부간의 생활에 끼어들어 조언과 충고를 하며 간섭을 멈추지 않는다.

가족은 가장 가깝고 의지가 되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지나친 간섭은 자유를 구속할 뿐이다.

사랑의 형태로 다가오는 구속은 양면성을 지니고 있다.

구속은 야단, 체벌, 감시, 감독과 같은 형태를 띠게 마련이다.

이렇게 구속을 받으면서 살다 보면 막상 간섭이 없어질 때 허전하기 짝이 없게 되며, 오히려 간섭을 받을 때 상대방이 자신을 사랑한다고 생각하게 된다.

 

간섭과 통제의 희생자에게는 사랑 역시 쉽지 않다

 

간섭에 익숙해져 버린 사람들은 성인이 되어서 배우자를 선택할 때도 영향을 받게 된다.

어떤 사람은 간섭이 심한 부모와 유사한 사람을 선택하고 결혼한 후에는 일부러 멀어지기도 한다.

또 어떤 사람은 반대로 간섭을 피하기 위해 자신에게 별관심도 없고 냉랭해 보이는 사람과 결혼한 후에는 부모의 간섭을 도리어 그리워하기도 한다.

성장과정 중에 간섭으로 인해 형성된 답답함, 분노감은 성인이 되어 결혼한 후에도 영향을 미친다.

간섭을 당하고 결정권을 박탈당한 삶을 어려서부터 지내왔기 때문에 과도한 관심을 보여주는 상대방을 선택하게 되고, 그 대가를 치르게 될 수도 있다.

통제당하고 결정권을 박탈당한 삶을 어려서부터 살아왔기 때문에 통제하고 자기 마음대로 결정하는 상대방을 선택할 수도 있는 것이다.

반대인 경우도 있다.

그런 관계가 싫어서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주는 사람과 살고 싶어한다.

그리고 겉으로는 자신에게 그리 관심이 많지 않은 것 같아 보이는 사람이 자신에게 관심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자신을 있는 그대로 사랑해 주는 사람에 대한 환상을 키우는 것이다.

그런데 막상 가까워지고 상대방이 실제 사람으로 다가오게 되면 어려서부터 가져온 간섭에 대한 거부감 때문에 주춤주춤한다.

그렇게 연애가 될 듯하면 깨지고, 될 듯하면 깨지기를 반복하다가 결국 잘 알지도 못하는 상대와 결혼하게 된다.

그리고 결혼 후 자신에게 관심이 없다고 상대방을 탓하면서 이제는 자신이 상대를 간섭하기 시작한다.

 

간섭과 통제의 상처, 이렇게 극복하자

 

간섭과 구속이 바람직한 효과를 발휘하기 위해서는 그 밑에 사랑이 전제돼 있어야 한다.

그럼에도 어떤 부모는 간섭과 구속의 형태로 아이를 사랑한다.

바꿔 말하면 간섭과 구속이 아닌 다른 형태로 아이를 사랑한다는 것에 익숙하지 못하다.

본인들 역시 학교에 들어간 후에는 공부하라는 간섭과 구속이 아닌 형태로 사랑을 받아본 기억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눈에 보이는 간섭과 구속이 아닌, 그 밑에 깔려 있는 사랑이 사실은 아이들을 바른 길로 이끄는 힘이 된다.

간섭과 구속 외에 다른 형태로 사랑을 줄 수 있다면 아이들에게 더욱 큰 힘이 될 것이다.

간섭과 구속과는 별도로 조건없는 사랑을 표현해야 균형이 맞는다.

아이들의 죄책감을 불러일으키는 전략을 반복적으로 사용하는 부모 밑에서 자라다 보면 진정한 의미의 죄책감을 갖기가 더욱 어렵다.

진정한 죄책감이 결여되면 인생에서 문제가 생겼을 때 스스로 책임을 지지 않으려고 하면서 주위의 탓, 남의 탓, 부모의 탓으로 돌린다.

이런 태도가 실은 자신이 스스로 선택하고 결정하는 과정 없이 자란 사람들에게 남겨진 가장 큰 마음의 상처다.

진정한 죄책감이 없는 사람은 무슨 일이 생길 때마다 자신을 희생자 위치에 놓는다.

결혼한 후에는 자신을 잘못된 결혼의 희생자라고 생각하고, 아이를 낳은 다음에는 말 안 듣는 아이들로 인해 고통받는 희생자라고 생각한다.

자신이 선택해서 회사에 들어가놓고는 최선을 다해 노력하지도 않고 대우가 나쁘다며 회사 탓만 하고 자신이 선택해서 사업을 벌였다가 말아먹고는 운이 나빴다고 한다.

자신이 선택한 것에 대해 책임을 지지 않는 것은 간섭, 구속, 통제만 존재하고 결정의 자유, 선택의 자유를 빼앗긴 데서 오는 후유증이다. 

따라서 결정의 자유, 선택의 자유가 박탈된 삶을 살았던 사람들이 지금부터라도 자유를 얻기 위해서는 힘들더라도 현재의 상황에 대해 온전히 책임질 수 있어야 한다.

성인이 되어 내 인생에서 일어난 많은 일들은 결국 내 선택과 결정에서 비롯되었다는 책임의식을 가질 때 비로소 미약하나마 삶이 변화하기 시작한다.

 

자신의 의지로 상처를 극복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갖자

 

내가 스스로 결정한 잘못된 선택이 남이 결정해 준 잘된 선택보다 의미가 있다.

남이 결정해 준 것은 제아무리 결과가 좋아도 마음속에서는 내가 처음 생각했던 선택에 대한 아쉬움이 남는다.

더욱이 스스로 선택하고 실패하고 다음에 더 나은 선택을 하는 데서 인생에 대한 자신감도 생기는 법이다.

그런데 간섭과 통제를 받고 자라다 보면 인생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떨어진다.

우리가 아이였을 때는 자신이 결정할 수 있는 부분도 제한되어 있지만 책임 또한 제한적이다.

그러나 성인이 되면 자신이 결정할 수 있는 부분이 많아지지만 책임도 많이 져야 한다.

그런데 스스로 선택하는 일이 없이 간섭과 통제에 시달리면서 상처를 받은 사람들은 나이가 들어 자신에게 선택의 기회가 와도 그 기회를 살리지 못한다.

또 실수를 안 하기 위해 선택을 기피하는 경우도 많다.

거기에 더해 과도한 통제욕구를 지닌 부모들은 자식이 성인이 되었다 해도 간섭을 포기하지 않기 때문에 집안에서는 여전히 아이 취급을 받는 이중적인 상황이 벌어진다.

그러다 보니 어려운 일에 처하면 불안해지고 어쩔 줄 몰라하게 된다.

누군가 명확하게 지시해 주고 되든 안 되는 앞길을 제시해 주기를 바랄 뿐이다.

하지만 누구도 나 대신 인생을 살아줄 수는 없는 법이다.

따라서 어린시절부터 간섭과 통제를 당하고 성장해 온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누구도 그 상황에서 자신보다 더 나은 결정을 할 수 없다는 것을 명확하게 인식하는 것이다.

 

자신의 선택이 바로 최고의 선택임을 믿어라

 

간섭과 통제를 받고 자란 사람들은 성장과정에서 끝없이 세뇌당하면서 산다.

부모는 "너보다 부모인 우리가 더 좋은 결정을 해줄 수 있다"고 끝없이 세뇌한다.

하지만 만약 부모가 정말로 옳았다면 당신은 지금과 같은 고통을 당하고 있어서는 안 된다.

즉 당신이 고통당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부모가 틀렸다는 것을 보여주는 가장 명확한 증거다.

그리고 부모뿐 아니라 누구도 이 상황에서 당신보다 더 잘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당신의 선택이 바로 최고의 선택이다.

그 결과가 비록 안 좋았더라도 당신은 그때 그 순간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만약 당신이 모든 것이 당신의 선택이었고, 그래서 책임지기로 결심했다면, 이제 당신에게는 희소식이 있다.

당신은 이제부터 연속된 올바른 선택을 통해 지금의 불행에서 벗어날 수 있다.

한번에는 안 될 수도 있다.

하지만 당신의 잘못된 선택이 계속 이어져서 지금의 큰 어려움을 가져왔다는 사실을 받아들인다면, 이제부터 올바른 선택을 통해 이 어려움을 극복하고 성공을 이루게 되리라는 사실도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아무리 어렵고 괴롭더라도 지금 이 순간부터 올바른 선택을 해보자.

 

마음속 구속의 틀을 깨뜨려라

 

어린시절 간섭과 통제를 받고 자랐던 사람들은 자신이 어른이 되면 절대로 남을 간섭하거나 통제하지 않겠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흉보면서 닮게 된다는 말도 있듯이 간섭을 받고 자란 사람들 중에는 다른 사람들을 간섭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본인은 나름대로 상대방을 걱정해 주고 신경써 주는 것이지만 상대방의 입장에서는 잔소리와 간섭으로밖에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이들은 자기 뜻대로 될 때까지 포기하지 않고 잔소리를 해대면서 간섭하기 때문에 상대방은 피곤하기 이를 데 없다.

이렇게 남을 통제하는 사람들은 남의 행동이 자기 뜻대로 안 되면 견디지 못한다.

그들은 남이 자기 뜻대로 움직이지 않으면 상대방이 자신을 이기려고 그러는 거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자신이 옳다는 것을 증명해야 하기 때문에 집요하게 상대방이 자신이 원하는 대로 움직이게끔 한다.

나도 옳고 상대방도 옳다는 생각은 하지 못하는 것이다.

나도 틀리고 상대방도 틀릴 수 있다는 것은 더더욱 상상도 못한다.

내가 틀리고 상대방이 옳다는 생각 또한 죽어도 할 수가 없다.

하지만 그러한 무한통제, 무한간섭은 마음의 상처만 점점 더 키울 뿐이다.

그런 비합리적인 통제욕구와 간섭욕구는 언젠가는 벽에 부딪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남에게 강요하는 것을 멈출 때 내 상처도 치유될 수 있다.

남을 자유롭게 해주어야만 나도 자유로워진다.

남을 통제하려고 하면 나도 역시 통제본능에 의해 통제당한다.

따라서 강요하기를 중단하고 상대방을 자유롭게 해주어야만 오랫동안 살아온 방식에 따라 내가 나를 통제하고 구속하는 것을 멈출 수 있다.

아울러 순수한 호의과 관심을 통제와 간섭으로 착각해서도 안 된다.

누군가 자신에게 관심을 가지면 어색해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것은 자라면서 진정한 관심을 받아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사랑을 많이 받고 자란 사람은 누가 자신에게 관심을 가지면 호감의 표현으로 받아들이지만 간섭을 많이 당하고 자란 사람은 그것을 간섭의 표현으로 받아들인다.

그래서 통제와 간섭의 상처에 시달리는 사람은 누군가 자신에게 관심을 보이면 일단 경계부터 하고 본다.

또 누군가 아무런 대가나 목적 없이 순수하게 관심을 기울여도 마음이 불편하다.

그래서 상처를 치유해 줄 사람들이 다가갈 수 없다.

애정을 애정으로, 사랑을 사랑으로, 관심을 관심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 때 삶이 변할 수 있다.

 

 

출처: <트라우마 테라피>

728x90
반응형
BIG

'Book' 카테고리의 다른 글

<트라우마 대물림을 치유하는 법>  (0) 2023.04.23
<엄마도 가끔은 엄마가 필요해>  (0) 2023.04.23
<트라우마 테라피> - 공포의 상처 치유  (0) 2023.04.16
<가족의 발견>  (1) 2023.04.11
<융의 심리학 해설>  (2) 2023.03.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