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결정> - 자기결정의 삶은 어떤 모습일까?

2024. 5. 16. 19:43B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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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부로부터의 폭압, 즉 그 어떤 위협도 없는 상태를 원할 뿐만 아니라 우리가 경험하고 싶거나 하고 싶은 것을 못 하게 막는 질병이나 가난도 원치 않아요.

이것을 타인에 대한 배려 없이 오직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하려는 소망과 혼동해서는 안됩니다.

스스로 결정짓는 삶은 규범의 틀 안에서 외부로부터의 강제가 없는 삶, 그리고 어떤 규범을 통용할 것인지의 결정에 참여할 수 있는 삶을 말하는 것이 되겠습니다.

 

독립성은 타인에 관한 것이 아닌, 스스로에 대해 결정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하는 것이 되지요.

내 삶의 작가, 내 인생의 주체가 되는 것이 주제가 됩니다.

이는 사고와 소망과 경험의 차원에서 내 행위의 직접적 바탕이 되는 내면세계에 영향을 미침으로써 이루어집니다.

 

우리의 의지와 경험이 자신의 개인적 정체성의 일부가 되기 위해서는 삶의 역사라는 바탕을 가지고 있어야 하며 동시에 삶의 역사가 주는 조건에 의해 제약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한 자기 결정권이 있다고 할 때, 자기 결정권은 그러한 선제조건들로 이루어진 인과관계적 삶이 흘러온 틀 안에서의 영향력으로만 존재합니다.

 

나의 내면세계가 외부와 아무리 밀접하게 얽혀 있다고 하더라도 하나의 세계와 또 다른 하나의 세계 사이에는 엄청난 차이가 존재합니다.

하나는 자신의 사고와 감정과 소망을 주관하여 말 그대로 삶의 작가요, 그의 주체가 되는 삶이고, 다른 하나는 어떤 사건을 단순히 맞닥뜨리거나 당하여 그 일로 인한 경험에 그저 속수무책으로 압도될 수밖에 없는, 그래서 주체가 되는 대신에 단순히 경험이 펼쳐지는 무대가 될 수밖에 없는 삶을 가리킵니다.

자기결정을 이해하는 것은 바로 이런 차이를 이해하는 데서 출발합니다.

 

자기 자신과의 거리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그 하나는 인식과 이해의 거리입니다.

내가 생각하고 느끼고 원하는 이것은 과연 무엇일까?

그리고 이 생각과 느낌과 소망은 어떻게 생겨났을까?

자기결정은 가능성에 대한 인지력, 즉 상상할 수 있는 능력을 필요로 합니다.

 

일차적인 사고, 감정, 소망에 방향을 맞추어 이차적인 사고, 감정, 소망을 발전시키는 능력으로부터 자기결정이 성공하는 경험을 하느냐 하지 못하느냐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것이 탄생합니다.

그것이 바로 자아상입니다.

자아상은 우리가 어떤 모습이고 싶은가에 대한 생각입니다.

우리의 삶이 내적으로 그리고 외적으로 우리의 자아상과 조화롭게 어울릴 수 있을 때, 그리고 우리가 행위와 사고와 감정과 소망에 있어서 되고 싶어 하는 모습의 사람이 되었을 때, 그것을 자기결정적 삶이라고 할 수 있다는 것이지요.

 

원하는 나의 모습과 현재의 내가 너무 달라 계속해서 마음의 괴로움에 시달리고 있다면 자아상뿐만 아니라 자꾸만 고개를 쳐드는 그 욕구들의 근원지를 찾아 나서야 합니다.

알지 못하고 이해하지 못하는 사이 나를 조종하는, 나의 느낌들과 내가 원하는 것들의 표면 밑에서 흐르고 있는 소용돌이를 감지해내는 것이 중요합니다.

자기결정은 내가 나 자신을 이해하는 것과 굉장히 깊은 연관이 있습니다.

현실적인 자아상에 도달하여 그 자아상과 합일을 이루려 하는 사람은 의식되지 않은 삶의 이력을 꿰뚫어 보는 작업을 시도해야 합니다.

이렇게 해야만 자기인식에 걸림돌이 되는 내적 강박과 자기기만을 해결할 수 있지요.

자기인식은 우리로 하여금 투명한 정신적 정체성을 형성해주고, 이를 통해서라야만 말 그대로 삶의 작가와 삶의 주체가 될 수 있게 해주는 것입니다.

 

자신에 관해 결정한다는 것, 이것은 자신의 생각에 관해 방향을 정하고 믿어왔던 것들을 다시 한 번 시험대에 올린다는 것을 뜻하기도 합니다.

확실하다고 믿어오던 것들에 대해 긍정과 부정의 증거를 찾아가는 동안 나는 그 확신들이 변화할 수 있는 내적 과정의 문을 열게 됩니다.

이 과정이 충분히 반복되면 내 의견의 총합이 완전히 탈바꿈하여 결과적으로 생각의 정체성이 변화하게 됩니다.

 

우리가 어떤 일에 대해 말하는 것은 대부분의 경우 그 일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습니다.

그러나 겪었던 일을 말로 표현함으로써 자기 자신을 파악하고 이해하려고 할 경우엔 다른 결과가 나옵니다.

어떠한 일에 대해 자신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자문하며 그동안 틀림없다고 확신하던 생각에 대한 증거들을 다시금 살펴볼 때, 그것이 검사대에 오르고 테마가 되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그 확신에 변화의 가능성이 있다고 느낀 경험이 우리에게는 있습니다.

 

자기 자신에 대한 이해와 표현이 허공에 울리는 메아리에 그치지 않고 내적 구조까지 변경하는 과정을 다르게 표현한다면, 자기표현 과정을 통해 개인적 정체성을 만들어가는 작업을 한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무의식적인 것을 언어로 나타냄으로써 의식 위로 끌어올리는 것도 이 작업의 하나지요.

 

일단 인식된 경험을 세분화하고 구체화하는 것,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의식되지 못한 것을 의식화하는 것, 이 두 가지 방법은 우리가 언어적 발현을 통해 우리의 감정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자기결정의 적용 범위를 내면으로 확장할 수 있는 방법입니다.

우리가 감정과 더불어 살고자 하는 이유는 무엇보다도 그것이 우리에게 중요한 것이 과연 무엇인지 가르쳐주기 때문입니다.

 

무언가를 기억한다는 것은 경험된 과거를 스스로와 타인에게 이야기하는 것을 뜻할 때가 많습니다.

이야기하기에서 그 중력의 구심점이 되는 것은 자기 자신입니다.

즉 나에게 경험된 과거의 이야기를 할 때 그 이야기는 전부 나를 중심으로 돌아간다는 말이지요.

자기결정적 존재가 되려면 일단 이해하는 위치에 있어야 합니다.

즉 기억이 휘두르는 힘과 끈질김을 우리의 정신적 정체성의 표현으로 보는 법을 배우고 나면 기억은 더 이상 외부 이물질이 아니게 되어 적군으로서의 공격을 멈추게 되는 것입니다.

 

그저 하루하루 보내면서 미래에 가까이 다가가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결정한 계획을 가지고 만나게 되는 그 무엇으로 경험하기 위해 우리는 우리가 누구인지 그리고 누가 되고 싶은지에 대한 그림, 즉 우리 자신에게 설명하는 그대로 우리의 과거와 일치하는 그림이 필요합니다.

그렇게 되면 현재의 경험도 달라집니다.

 

우리는 대부분의 시간을 타인의 시선을 받으며 살아가는데, 이 시선은 우리를 우리 자신에게서 끌어내 우리의 욕구에 의해 정의된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기대에 맞춰진 생소한 삶 속으로 집어넣기도 합니다.

타인이 휘두르는 힘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여기서 가장 쉬운 방법은, 외부로부터의 모든 시선을 독립적인 정신적 정체성으로 되받아치는 것입니다.

그러나 타인으로부터 완전히 분리되어 생겨나거나 작용하는 정체성이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자기가 누구인지 끊임없이 묻고 또 묻지 않으면 안 됩니다.

내가 가진 것 중 나는 보지 못하지만 타인은 볼 수 있는 것에는 어떤 것이 있는가?

타인의 시선은 나의 자기기만을 발견하는가?

이런 식으로 우리는 자신의 자아상을 점검하고 자기 인식에 새로운 전환점을 선사하는 계기로 삼을 수 있습니다.

 

 

출처: <자기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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