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10. 22. 13:41ㆍBook
(책 속에서)
3장 ~ 4장
설리번 선생님은 다음 해 3월이 되어서야 우리 집에 왔다.
이렇게 하여 나는 마침내 이집트를 탈출하여 시나이 산 앞에 서게 되었다.
거기서 나는 내 영혼을 어루만지는 어떤 신성한 힘으로부터 수많은 경이로움을 볼 수 있는 시각을 선사받았다. 또한 신성한 산으로부터 "지식은 곧 사랑이고 빛이요, 시각이다."라고 외치는 목소리도 들을 수 있었다.
독자 여러분은 안개가 자욱하게 낀 바다를 항해해 본 적이 있는지? 그때는 만져질 것처럼 눅진하고 희뿌연한 앞이 보이지 않는 시계 제로의 암흑에 갇힌 기분이었을 것이고, 타고 있는 커다란 배는 극도의 긴장과 불안감 속에서 다림추와 측연선에만 의지하여 해안성 쪽을 향해 뱃길을 더듬더듬 헤쳐 가고 있었을 것이며, 배 위에 탄 사람은 그저 심장 뛰는 소리만 들리는 가운데 무슨 일이 일어날지 초조하게 지켜 보고만 있었을 것이다. 교육이 시작되기 전의 내 상황이 꼭 그 배와 같았다. 차이점이라면 내게는 나침반도 측연선도 없었고, 항구가 얼마나 가까이 있는지도 알 수 없었다는 것이다. "빛, 빛을 다오!"가 내 영혼의 소리 없는 아우성이었다. 그런데 바로 그날 그 시간에 사랑의 빛이 나를 비추었던 것이다.
나는 발걸음이 다가오는 걸 느꼈다. 엄마라고 생각하면서 손을 뻗었다. 누군가 내 손을 잡았다. 마침내 나는 세상의 모든 사물들을 내게 환하게 보여 주기 위해, 아니 무엇보다도 나를 사랑하기 위해 오신 분의 품에 꼭 안겼다.
몇 주 동안 선생님과 함께 지낸 후에 나는 드디어 모든 사물에는 저마다 이름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차가운 물이 한 손 위로 쏟아지는 가운데, 선생님은 다른 손 안에 'W-A-T-E-R'라는 단어가 손 위로 쏟아지는 놀랍고 차가운 물질을 뜻한다는 걸 깨달았다. 이 살아 움직이는 단어가 내 영혼을 깨우면서 빛과 희망, 기쁨, 그리고 자유를 선사했다! 물론 넘어야 할 장애물이 여전히 많았지만, 그 장애물도 시간이 지나면 모두 극복할 수 있는 것들이었다.
우물집을 떠나면서 나는 배움의 열망으로 가득찼다. 어떤 물건이든 이름이 있었고, 물건의 이름을 접할 때마다 내게 새로운 생각이 떠올랐다. 집으로 돌아왔을 때, 내가 만지는 모든 물건마다 생명의 기운으로 몸을 파르르 떨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내게 생긴 낯설지만 새로운 시각으로 물건들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그날 나는 아주 많은 단어들을 배웠다. 그 단어들을 모두 기억하지는 못하지만, 'MOTHER', 'FATHER', 'SISTER', 'TEACHER' 등은 기억이 난다. 이 단어들은 나중에 '아론의 지팡이에 꽃들이 핀 것처럼' 내게 세상을 활짝 꽃피워준 말들이었다. 많은 일이 벌어진 그날 밤에 침대에 누워서 그날 선사받은 기쁨들을 다시 음미하면서 처음으로 내일이 어서 오길 갈망하는 순간, 나보다 더 행복한 아이는 없었으리라.
-> 단어와 대상에 대해 모를 때의 답답함. 인형을 깨뜨림.
-> 선생님과 자연과의 산책을 통해, 물을 직접 감각으로 느끼면서 단어를 배웠을 때 큰 깨달음을 경험한다. 그 단어를 의미하는 대상과 언어가 연결됨이 느껴질 때, 헬렌은 빛과 희망과 자유를 느꼈다고 한다.
5장
내 영혼이 갑자기 눈을 뜬 후에 맞이한 1887년 여름에는 많은 일이 있었다. 그때 나는 손으로 사물들을 탐험하면서 만지는 모든 사물마다 이름을 익히는 일에 몰두해 있었다. 사물들을 더 많이 만져 보면서 이름과 그 쓰임새를 익힐수록, 세상과 연결되는 듯한 유대의 기쁨과 자신감도 그만큼 늘어났다.
선생님은 초창기의 내 모든 생각들을 자연과 연결시킴으로써, '새들과 꽃들과 내가 서로 행복한 동료'라는 느낌을 내게 선사해 주었다.
6장
'LOVE'라는 단어의 뜻을 처음 물어 보았던 어느 날 아침은 지금도 기억이 난다. 아직 많은 단어들을 배우기 전이었다. 나는 정원에서 일찐 핀 제비 꽃을 몇 송이 꺾어서 선생님에게 갖다 주었다. 그때 선생님이 내게 키스를 하려고 했다. 그러나 당시에 나는 엄마를 제외한 누구한테서든 키스받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설리번 선생님은 포근히 나를 감싸 안더니 내 손안에 '나는 헬렌을 사랑해'라고 써 주었다.
"사랑이 뭐예요?" 나는 물었다.
선생님은 나를 더 끌어안고는 내 심장을 가리키면서 "여기에 있는 거야."라고 말했다. 심장이 뛰고 있다는 것을 처음으로 깨닫게 된 순간이었다. 당시에는 손으로 만질 수 없는 것은 어떤 것도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에 선생님의 말을 듣고는 정말 당혹스러웠다.
"사랑은 태양을 가리고 있던 구름 같은 거야."
"구름은 만져지지 않아. 하지만 비가 오는 건 느낄 수 있고, 꽃들과 목마른 대지가 무거운 날 뒤에 내리는 단비를 얼마나 반가워하는지도 알 수 있어. 사랑도 역시 만져지지 않아. 그렇지만 사랑이 만물에 선사하는 달콤함은 느낄 수 있지. 사랑이 없으면 행복하지 않고 놀고 싶은 마음도 안 생겨."
이 아름다운 진리에 대한 깨달음이 갑자기 마음 속에서 불쑥 떠올랐다. 동시에 내 영혼과 다른 사람들의 영혼이 보이지 않는 끈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도 느껴졌다.
11장
가을에 나는 즐거운 추억들을 가득 안고 남부의 우리 집으로 돌아왔다. 북부의 여행을 회상해 보면 여행에 알알이 매달려 있던 풍성하고 다양한 경험들이 지금도 놀랍다. 그 여행은 내게 벌어진 모든 일의 출발점이었던 것 같다. 새롭고 아름다운 세상의 보물들이 내 발치에 펼쳐졌고, 몸을 돌릴 때마다 즐거움과 새로운 지식을 섭취할 수 있었다. 나는 벌어지는 모든 일마다 푹 빠졌다. 한 순간도 조용히 있지 않았다. 내 생활은 마치 짧은 하루에 일생을 모두 살아야 하는 하루살이들처럼 분주한 움직임으로 가득 찼다. 나는 내 손 안에 글자를 써 주며 얘기를 나눈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내 생각은 이렇게 즐거운 공감을 나누는 가운데 솟구쳐 올라 또 다른 생각을 만났다. 보라, 기적이 마침내 이루어졌다! 내 마음과 다른 사람들의 마음 사이를 가로막고 있던 불모의 땅들은 이제 장미꽃처럼 활짝 폈다.
13장
나는 내 의사소통 방법이 주변 사람들과 다르다는 걸 이미 오래 전부터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귀가 들리지 않아도 말하기를 배울 수 있다는 걸 알기 이전 부터 나는 내 손바닥 지문자의 의사소통 방식이 불만스러웠다. 의사소통 수단이 손바닥 지문자밖에 없는 사람은 늘 좁은 공간에 갇혀 있는 답답함을 느낀다. 이런 느낌은 뭔가 채워지기를 갈망하는 짜증스러운 결핍감으로 발전하면서 나를 들볶았다. 내 생각들이 마치 맞바람을 만난 새들처럼 날개를 펄럭이며 높이 솟구쳐 올랐던 일도 종종 경험했고, 그래서 나는 입술과 목소리를 사용해 보려고 계속 고집했다. 친구들은 내가 결국 헛수고임을 알고 실망 할까 봐 이런 내 고집을 주저앉히려고 했다. 그러나 나는 집요함을 버리지 않았다. 마침내 이 커다란 장벽을 허물어뜨린 일이 벌어졌다.
통역할 필요가 없이 날개 달린 단어들을 바로 입으로 말해서 의사소통을 할 수 있는 능력이 내게 알마나 절박했는지는 도저히 말로 설명할 수 없다. 입으로 말을 하게 되니까, 행복한 생각이 입으로 튀어나오는 단어들 밖으로 날개를 퍼덕이며 훨훨 날아올랐다. 입으로 말을 못했다면, 내 생각들은 아마도 지문자를 쓰는 손가락을 탈출하려고 헛힘만 빼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내가 이 짧은 시간에 말을 잘하는 수준에 도달했다고 오해하면 안된다. 겨우 말의 구성요소들만 익혔을 뿐이었다. 내 말을 전부 이해할 수 있었던 풀러 교장과 설리번 선생님과는 달리, 대부분의 사람들은 내가 하는 말의 1/100도 알아듣지 못했을 것이다. 또한 내가 이런 말의 구성요소들을 익힌 후에 말하기 학습의 나머지 단계들을 모두 혼자 해치웠다는 것도 사실이 아니다. 설리번 선생님의 천재성, 지칠 줄 모르는 끈기, 헌신적인 노력이 없었다면 자연스럽게 말할 수 있는 수준까지 발전하는 건 절대로 불가능했을 것이다. 먼저 가장 가까운 친구들에게 내 말을 이해시키는 것만으로도 밤낮을 가리지 않고 연습해야만 했다. 다음으로 내가 각각의 소리를 명료하게 발음한 후에 발음한 모든 소리를 여러 가지 방식으로 연결해 보는 작업은 언제나 설리번 선생님의 도움을 받아야만 가능했다. 매일매일 내가 단어를 잘못 발음할 때마다 선생님이 지적해 주는 일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드디어 말하기를 익혔을 때 나는 집으로 돌아가고 싶어 안달이 났다. 마침내 최고로 행복한 순간이 다가왔다. 집으로 돌아가는 동안, 나는 설리번 선생님에게 쉬지 않고 재잘거렸다. 물론 말의 내용은 전혀 중요하지 않았고, 단지 말하기 능력을 마지막 순간까지 다듬고 향상시키기 위한 행동이었다. 기차는 내가 미처 깨닫기도 전에 터스컴비아 역에 정차했고, 플랫폼에는 가족들 모두가 마중 나와 있었다. 엄마가 말없이 나를 꼭 끌어안고는 기쁨에 몸을 떨면서 내 말의 모든 음절을 들어주고 있었던 광경, 어린 동생 밀드레드가 사용하지 않는 내 다른 손을 잡고 키스하면서 춤을 추던 광경, 말 한 마디 없는 아빠에게서 자랑스러움과 사랑을 담뿍 느낄 수 있었던 광경을 떠올리면 지금도 눈물이 그렁그렁해진다. 마치 이사야의 예언이 내 안에서 이루어진 것 같았다. '산과 언덕들은 너희 앞에서 기뻐 소리치고, 들의 나무들은 모두 손뼉을 치리라.'
15장
인생 스케치를 쓰기 시작하면서도 겁나고 두려운 마음은 여전했지만, 선생님은 단호한 결의로 나를 분발시켰다. 내가 끝까지 참아내기만 하면 다시 비상할 수 있는 정신적인 발판을 되찾으면서 내 재능이 뭔지 확실히 알게 될 거라고 선생님은 생각했다. 나는 <서리 왕> 사건 때까지는 철부지 어린애 같은 삶을 살았었다. 이제는 생각들이 내면으로 향하면서 보이지 않는 것들을 볼 수 있었다. 시련 덕분에 마음이 더욱 투명해지고 삶에 대한 깨달음이 더욱 진실해지면서, 나는 마치 일식 때처럼 그 사건으로 인해 어슴푸레하게 드리워진 반그림자에서 서서히 벗어날 수 있었다.
20장
지금까지 가장 절실하게 느껴지는 아쉬움은 바로 시간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전에는 내 마음과 자신에 대해 생각하고 돌아볼 시간이 많았다. 저녁이면 우리는 함께 앉아서 영혼이 들려주는 내면의 멜로디에 귀를 기울이곤 했다. 이 멜로디는 깊은 침묵에 휩싸여 있는 영혼조차도 사랑하는 시인의 시구에 깊고 달콤한 감동을 느낄 수 있는 한가로운 시간에만 들을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대학에서는 사람들의 생각과 대화를 나눌 시간이 없다. 대학은 생각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배우기 위해 가는 것 같다. 배움의 관문에 일단 들어서면 고독이나 책, 그리고 상상력 등, 아주 소중한 즐거움들을 휘파람 소리 들리는 소나무 숲에 두고 와야 한다. 미래의 행복을 위해 보물들을 차곡차곡 쌓고 있다는 것에 위안을 느껴야 한다는 생각도 한편으로 들었지만, 그러나 나는 궂은 날에 대비하여 재산을 저축하는 것보다 현재의 즐거움에 탐닉하는 현실적인 성품이었다.
강의가 계속된 짧은 1시간 동안 우리는 불필요한 주석이나 해설 없이도 옛날 대가들이 남긴 불멸의 아름다움과 멋진 생각들을 한껏 먹고 마시며 즐길 수 있었다. 또한 야훼와 엘로힘의 존재는 잊은 채로 구약성경의 달콤한 천둥소리를 영혼 속속들이 교감했으며, 집으로 돌아올 때는 영혼과 육신이 불멸의 조화를 이루며 삶을 영위하는 그 완벽한 경지, 진리와 아름다움이 고대라는 시간의 몸통에서 새롭게 번성하는 광경을 슬쩍이나마 엿본 느낌이 뿌듯했다.
21장
라퐁텐은 우리가 가진 고차원적인 도덕률의 심금을 울리는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가 가장 세게 연주하는 가락은 자기애의 음률이었다. 모든 우화를 관통하여 흐르는 그의 사상은 이성으로 자기애를 잘 인도하고 통제할 수만 있으면 행복은 필연적으로 따라온다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 생각해 보니 자기애야말로 모든 악의 근원이다. 물론 내가 틀릴 수도 있다. 라퐁텐이 인간을 관찰할 기회가 나보다 훨씬 더 많았을 테니까 말이다.
내 마음은 고대 특유의 사고방식을 자연스럽고 즐겁게 받아들였다. 그리스, 특히 고대 그리스는 내게 신비로운 매력을 발산했다. 내 상상 속에서는 그리스의 남신들과 여신들이 여전히 땅 위를 걸어 다니면서 사람들과 얼굴을 맞대고 얘기를 나누었다. 나는 또한 가장 사랑하는 신들에게 바치는 신전을 마음 속에 은밀하게 지어 놓기도 했다. 요정과 영웅, 반인반수들도 하나도 빠짐없이 알고 있었고 또한 사랑하기도 했다. 아니, 모두는 아니었다. 메데아와 이아손의 잔인성과 탐욕은 용서할 수 없을 정도로 너무 끔찍했고, 왜 신들은 그들이 나쁜 짓을 할 때는 그냥 내버려두었다가 나중에서야 비로소 사악하다고 벌을 주는 결말을 내는지 그 이유를 몰라 답답해 하곤 했다. 그 수수께끼의 해답은 지금도 모르겠다. 지금도 나는 종종 어떻게 죄악이 씨익 웃으며 스멀스멀 기어서 시간이라는 하느님의 집을 통과하고 있는데 하느님은 침묵을 지킬 수 있는 건지 의아해 하곤 한다.
모든 단어의 뜻과 주요 변화형태, 그리고 문장 내에서의 문법적 위치를 반드시 알아야만 훌륭한 시를 이해하고 감상할 수 있는 건 아니다. 물론 나는 해박한 교수님들이 <일리아드>에서 나보다 더 많은 보물들을 찾아낸 공로를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나는 보물들을 탐할 만큼 물욕이 강한 사람도 아니고, 나보다 현명한 사람이 있다는 사실 역시 불만 없이 받아들인다. 그렇지만 교수들이 비록 폭넓고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는 건 사실이더라도, 그 지식으로 찬란한 서사시가 주는 즐거움의 분량을 결정해서는 안 된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다. <일리아드>의 정말 멋진 시구들을 읽고 있으면 나를 좁고 답답한 삶의 상황에서 탈출시켜 하늘을 향해 들어올리는 영혼의 감각을 느낄 수 있다. 내 신체장애는 어느덧 잊혀지고, 내 세상은 공중으로 떠올라 속속들이 하늘 전체를 점령한다!
성경은 내용을 이해하기 오래 전부터 무작정 읽기 시작했다. 내 영혼이 성경의 놀랍도록 조화로운 세계를 알지 못하던 때가 있었다는 게 지금 생각해도 이상하다.
구약성경 <에스테르기>의 단순성과 엄청난 진솔함에는 감동적이고 경외스러운 요소가 있다. 에스테르가 사악한 왕 앞에 서는 장면보다 더 극적인 장면이 또 있을까? 에스테르는 자신의 생명이 왕의 손에 달려 있고, 왕의 분노에서 자신을 지켜 줄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여자로서의 두려움을 이기고 지극히 고귀한 애국심에 용기를 얻은 그녀는 '내가 죽으면 나만 죽을 뿐이지만, 반대로 내가 목숨을 부지하면 우리 민족이 살게 되리라'라는 일념 하에 왕 앞으로 나아갔다.
성경은 내게 '보이는 것은 잠시뿐이지만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하다'는 깊은 안도감을 선사한다.
22장
특히 달밤에 카누 타는 걸 즐긴다고 하면 독자 여러분은 미소를 지을 거라고 생각한다. 비록 달이 소나무 숲 뒤의 하늘 위로 떠올라 살며시 중천을 건너가면서 우리에게 빛줄기 길을 열어주고 있는 광경을 볼 수는 없지만, 그래도 나는 달이 거기 있다는 걸 잘 알고 있다. 쿠션 사이에 누워서 물 속에 손을 담그면 달이 지나가면서 수면 위에 아른아른 드리우는 옷자락이 실제로 만져지는 것 같다. 때때로 용감한 물고기 새끼들이 손가락 사이로 달아나고 수련이 수줍은 자태로 내 손을 지긋이 누르기도 한다. 도중에 만이나 여울을 벗어날 때가 많았는데 그럴 때면 갑자기 주변의 대기가 확 트이는 느낌이 밀려온다. 어떤 빛의 온기가 나를 감싸는 것 같은 순간이다. 이 온기가 그 동안 햇볕에 달구어진 나무에서 방출되는 것인지, 아니면 물에서 나오는 것인지 나는 모르겠다. 도시 한복판에서도 이 낯선 느낌을 똑같이 받은 적이 있었다. 폭풍우가 몰아치는 추운 낮에도 느꼈고 밤에도 느꼈다. 마치 따뜻한 입술이 내 얼굴에 키스하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우리들에게는 인류가 태초부터 쌓아 온 많은 경험과 감정들을 공감하고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이 내재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사람이면 누구나 녹색 대지와 졸졸 흐르는 물의 기억을 잠재의식 속에 가지고 있으며, 이전의 모든 세대로부터 전해진 이 재능은 시각과 청각 기능을 상실하더라도 더불어 소멸되지는 않는다. 물려받은 이 재능은 일종의 육감, 즉 시각과 청각과 촉각이 하나로 응축된 영혼의 감각이라고 할 수 있다.
상상에 잠기면 호메로스가 부르는 노랫소리가 들린다. 불안하고 머뭇거리는 발걸음으로 캠프 사이를 어슬렁거리면서 삶과 사랑과 전쟁, 고귀한 민족의 찬란한 업적을 읊고 있는 노래 말이다. 그건 경이롭고 아름다운 노래였으며, 눈먼 시인에게 영원 불멸의 왕관과 모든 시대의 찬탄을 선사한 작품이었다.
때때로 나는 조각상의 아름다움은 손이 눈보다 더 예민하게 느낄 수 있는게 아닌가 생각하기도 한다. 리듬감 있게 연출된 직선과 곡선들은 아무래도 보는 것보다 만져 보는 게 더 섬세하게 느낄 수 있는 것 같다. 사실이든 아니든, 남신과 여신의 대리석상들을 만져 보면 고대 그리스인들의 맹렬한 심장박동 소리가 느껴진다.
내 삶이 비록 장애에 따른 수많은 제약을 안고 있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아름다운 세상'의 삶과 겹치는 접점도 많은 것 또한 사실 아닌가? 세상에 존재하는 어떤 것이든 반드시 경이로운 요소들이 내재되어 있는 법이고 그건 암흑과 적막감도 마찬가지이며, 나 또한 어떤 상황에 놓이든 그 안에서 만족하는 법을 배우고 있다.
때때로 닫혀 있는 삶의 문에 가로막혀서 문 앞에 혼자 앉아 하염없이 열리기만을 기다리고 있노라면, 차디찬 안개 같은 고독감에 휩싸이는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닫힌 문 너머에는 빛과 음악, 달콤한 우정이 있지만 나는 들어갈 수 없다. 적막하고 몰인정한 운명이 길을 막고 있는 것이다. 운명의 오만한 명령에 기꺼이 딴지를 걸고 싶은 충동을 느끼기도 한다. 심장은 여전히 야성적이고 혈기왕성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입술까지 올라온 신랄하고 부질없는 말들은 정작 혀 밖으로 뱉어지지 못하고 속으로 삼키는 눈물처럼 다시 심장 속으로 떨어져 내릴 뿐이다. 엄청난 적막감이 내 영혼을 깔아뭉개는 순간이다. 그러나 다음 순간에는 미소를 머금은 희망이 다가오면서 "네 자신을 버리면 기쁨이 찾아올 거야."라고 속삭여 준다.
23장
나는 많은 천재들과 사귀면서 대화를 나누었던 기회를 내 삶에서 누린 가장 매력적인 특권들 중 하나로 꼽고 있다. 비룩스 주교님의 우정이 친구들에게 어떤 기쁨이었는지는 그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이해할 수 없다. 어린아이일 때 나는 주교님의 무릎 위에 앉아서 한 손으로 그의 큰 손과 깍지 끼는 걸 아주 좋아했다. 그때 주교님이 하느님과 영적 세계에 관해 아름다운 얘기들을 들려주면 설리번 선생님이 내 다른 손에 글자로 써 주었다. 나는 어린아이다운 놀라움과 기쁨을 느끼면서 주교님의 얘기를 들었다. 내 영혼이 물론 주교님의 심오한 영혼에 미칠 수는 없었다. 그러나 주교님은 진정한 삶의 기쁨을 내게 선사했고, 주교님을 만났다가 헤어질 때는 언제나 훌륭한 생각을 하나씩 가지고 돌아올 수 있었다. 이 생각들은 내가 자라면서 그 아름다움과 뜻의 깊이가 함께 성장했다. 언젠가 내가 세상에는 왜 이렇게 종교가 많은지 이유를 몰라 쩔쩔매고 있을 때 그는 말했다.
"헬렌, 세상 어디에나 보편적인 종교는 하나뿐, 바로 사랑의 종교야. 네 마음을 다하여 하느님 아버지를 사랑하고 네 모든 힘을 기울여 하느님의 모든 자녀를 사랑하렴. 그리고 선의 능력은 악의 능력보다 위대하다는 것과 천국의 열쇠가 이미 우리 안에 있다는 걸 기억하렴."
주교님의 삶이야말로 주교님이 말씀하시던 위대한 진리를 몸소 행복하게 구현한 실례였다. 그의 고귀한 영혼에는 통찰력을 낳은 신앙 이외에도 사랑과 더없이 해박한 지식이 함께 버무려져 있었다.
나는 지금 이 세상이 너무 행복하여 미래의 저 세상은 그다지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아름다운 하늘나라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는 친구들을 생각해 본 적은 있다. 여러 해가 흘렀지만 그 친구들은 여전히 내게 아주 가깝게 느껴져서, 그들이 죽기 전에 그랬던 것처럼 언제든 내 손을 잡으면서 다정한 말을 건네는 상황이 다시 오더라도 나는 전혀 어색하지 않을 것 같다.
편지들 중에서
사랑하는 풀러 교장선생님,
오늘 아침 제 마음은 기쁨으로 가득찼어요. 새로운 단어들을 말하는 법을 많이 배웠구요, 문장도 몇 개 만들 수 있거든요. 어제 저녁에 저는 뜰로 나가 달님한테 말했어요. "오, 달님아! 나에게 오렴." 제가 말을 걸어 주니 사랑스러운 달도 기뻤을 거라고 생각하세요? 제가 말하는 것을 보면 엄마는 얼마나 기뻐하실지! 엄마와 제 소중한 여동생에게 너무 너무 말을 건네 보고 싶어서 6월까지 도저히 기다릴 수가 없어요. 밀드레드는 제가 손가락으로 글자를 써주면 알아듣지를 못했어요. 하지만 이제는 동생이 제 무릎 위에 앉으면 기쁜 얘기들을 많이 들려줄 거예요. 둘 다 정말 행복할 거예요. 교장선생님은 아주 많은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들어주니 많이 많이 행복하신가요? 당신은 정말 친절하고 참을성이 많은 분이라고 생각하구요, 저는 정말 당신을 끔찍하게 사랑해요...
사랑하는 브룩스 신부님, 약속한 대로 제 사진을 보내 드려요. 이번 여름에 이 사진을 보고 당신의 생각들이 날개를 펴서 남쪽에 있는 당신의 행복한 어린 친구에게 날아오시길 바래요. 전에는 사진도 조각상처럼 손으로 만져서 느낄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생각하곤 했지만, 이제는 그런 생각을 별로 안 해요. 사랑하는 하느님이 아름다운 사진들, 심지어 제가 볼 수 없는 것들의 사진들까지도 제 마음 속에 가득 채워 주셨기 때문이에요. 세상에 존재하는 가장 착하고 아름다운 것들은 볼 수도 없고 만질 수도 없으며 다만 마음으로 느낄 수 있을 뿐이라는 선생님의 설명을 듣고서 당신의 어린 헬렌은 얼마나 행복했는지 몰라요. 사랑하는 브룩스 신부님, 당신의 눈이 혹시 빛을 볼 수 없다면 이런 제 말을 훨씬 쉽게 이해하실 텐데요. 매일 저는 기쁨을 주는 것을 발견하고 있어요. 어제는 동작이란 게 얼마나 아름다운 것인지를 처음 생각했구요, 만물이 하느님에게 가까이 다가가는 몸짓이라고 느꼈어요. 당신도 그런 느낌인가요?
사랑하는 캐리 양, 오늘 당신에게 쓰는 이 편지는 제가 당신을 사랑하고 있다는 결정적인 증거로 여겨 주셔야 해요. 커스컴비아는 1주일 내내 '춥고 어둡고 음울' 했구요, 계속 비가 내린 음침한 날씨로 온통 우울한 생각에만 빠지면서 편지나 어떤 즐거운 일도 불가능한 상황이었음을 밝히지 않을 수 없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씩씩하게 살아 있다는 것, 즉 집에 안전하게 도착했고 매일 당신 얘기를 하고 있으며 당신이 보낸 재미있는 편지들을 아주 즐겁게 읽고 있다는 걸 알려 드려야 한다고 생각하면서 지금 이 편지를 쓰고 있는 거예요. 헐튼 방문은 아름다운 여행이었어요.
비유법 및 묘사어 중에서
비유법은 단어가 가진 문자 자체의 의미 이상으로 뜻을 풍부하게 전달하는 화술이다. 예를 들어 '가까운 친구'는 사전적 의미인 공간적 근접 관계를 말하는 게 아니다. 친구가 정신이나 기질에서 나와 '가깝다'는 뜻이다. 은유법이나 직유법, 기타 상징법과 같은 비유적인 언어를 사용하면 독자들은 전달되는 뜻을 훨씬 더 쉽게 이해하거나 시각화할 수 있다. 헬렌 켈러는 무엇보다도 독자들에게 자신의 독특한 경험을 느낀 그대로 이해시키고 싶은 절실한 욕구가 있었고, 그래서 자주 비유어나 상징어를 사용하여 뜻을 전달하고 있다.
켈러에게 빛은 곧 선(善)으로서 사랑과 지혜, 다른 사람들과의 접촉 등과 같은 의미인 반면, 어두움은 고립, 무지 그리고 절망을 상징한다. 선생님을 만나기 전에 켈러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 적막한 암흑의 세계'에서 살았다. 설리번 선생님이 온 사건은 그녀의 영혼을 밝게 비추는 '사랑의 빛'을 의미한다. <서리 왕> 사건이 있은 후에 켈러는 시간이 흘러야 서서히 벗어날 수 있는 그림자 속에 파묻혀 있었다. 이외에도 켈러는 더위와 추위, 감옥과 자유, 겨울과 여름, 불모와 꽃피움 등과 같은 상징을 흔히 사용하고 있다.
켈러는 자신의 경험을 기술할 때, 풍성하고 암시적이며 묘사적이고 섬세한 언어를 사용했다. 특히 자연을 언급할 때 그랬다. '나무들은 대리석 프리즈의 조각상들처럼 미동도 않고 하얗게 서 있었다. 솔잎향도 나지 않았다. 나뭇가지들은 쏟아지는 햇볕을 받아 다이아몬드처럼 반짝였고, 툭 건드리면 쌓였던 눈들이 우수수 떨어졌다. 햇빛이 얼마나 눈부신지 내 눈에 드리워진 암흑의 베일도 그냥 뚫고 들어왔다.'
켈러는 단순히 자신이 알고 있는 언어를 사용했을 뿐이며, 그건 우리들도 누구나 마찬가지다. 시각적인 은유법은 영어에서 아주 흔히 사용되는 표현법인데, 켈러도 단지 이를 통해 자신의 실제 경험을 독자들에게 훨씬 더 쉽게 이해시키려고 했을 뿐이다. 오히려 켈러는 시각과 청각이 정상인 사람들이 흔히 놓치는 측면들도 감지할 수 있는 능력이 있었다.
"인간은 눈과 귀를 통해서만 지각한다고 믿는 사람들은 내가 도시 거리와 시골길 산책을 비교할 때 도로포장의 유무를 제외한 나머지 차이도 알아챈다는 사실에 놀라워했다. 이 사람들은 내 몸 전체의 감각이 주변의 모든 상황에 생생히 반응한다는 사실을 잊고 있다." 자신이 겪은 일에 늘 생생한 감각을 유지함으로써 켈러는 이런 독특한 경험들을 세상에 말해 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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