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렌 켈러 자서전> 내 삶의 이야기 (2)

2021. 10. 15. 10:29B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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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장

 

지금까지 내가 살아온 얘기를 쓰려고 하니 두려움이 몰려온다.

마치 황금빛 안개처럼 어린 시절을 가리고 있는 베일을 벗기는 것이 왠지 망설여진다.

자서전을 쓰는 건 어려운 작업이다.

아주 어린 시절의 기억들을 정리하는데, 과거에서 현재까지 흘러 온 긴 세월 탓에 실제의 사실과 상상이 뒤섞이면서 영 구분이 되지 않는다. 

여자는 으레 아이 시절의 경험을 상상의 캔버스 위에 그리기 마련이다. 

내가 태어난 후에 처음 몇 년 동안 겪었던 일은 몇 가지만 생생하게 기억날 뿐, '나머지는 온통 감옥의 그림자 속에 파묻혀 있다.' 뿐만 아니라 당시의 기쁨이나 슬픔들은 이제 그 강렬한 느낌들이 사라졌고, 초창기 교육에서 정말 중요했던 많은 사건들도 엄청난 발견들이 가져온 흥분 속에 파묻혀 모두 잊어버렸다. 

그래서 얘기가 지루해지지 않게 가장 흥미 있고 중요한 에피소드 위주로 써내려 갈 것이다.

 

....

 

울새와 흉내지빠귀의 노래가 감미로웠던 한 번의 짧은 봄과, 과일과 장미가 풍성했던 한 번의 여름, 그리고 황금색과 진홍색의 향연이 펼쳐진 한 번의 가을이 쏜살같이 사라지면서, 열정적이고 늘 해맑았던 아이의 발치에 계절의 선물을 몇 가지 두고 갔을 뿐이었다. 그후 음울한 2월에 내 눈과 귀를 닫아버린 질병이 엄습하여 나는 신생아의 무의식 세계로 도로 곤두박질쳤다. 위장과 뇌의 급성 울혈이라고 했다. 의사는 아이가 살지 못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그러나 신기하게도 갑자기 찾아왔던 신열은 사라질 때도 어느 날 새벽에 갑자기 자취를 감추었다. 그날 아침에 가족들은 엄청 기뻐했지만, 내가 앞으로 보지도 듣지도 못하게 된다는 걸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심지어 의사도 몰랐다.

 

병에 대한 기억은 진짜 기억인지 그냥 상상일 뿐인지 지금도 뒤죽박죽 혼란스럽다. 특히 기억나는 모습은 엄마가 자상하게 위로하던 장면, 뒤척이는 선잠에서 막 깨어나서는 뻑뻑하고 화끈거리는 두 눈의 시선을 한때는 끔찍이 사랑했던 햇빛에서부터 벽 쪽으로 돌리면서 괴로워하고 당황해 하던 장면이다. 햇빛은 하루가 다르게 침침해졌다. 진짜 기억이기는 한 걸까, 어쨌든 이런 단편적인 기억들을 제외하고는, 모든 게 마치 악몽처럼 느껴질 뿐 실제로 일어났다는 현실감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서서히 나는 나를 에워싸고 있는 적막과 암흑에 익숙해지면서, 이전에 보았던 세상이 지금과는 다른 세상이었다는 사실조차 잊어버렸다.

 

내 영혼을 해방시킨 선생님이 올 때까지 그랬다. 그러나 태어나 처음 19개월 동안 나는 넓고 푸른 들판, 빛나는 하늘, 나무와 꽃을 언뜻이나마 보았고, 이후에 찾아온 캄캄한 암흑도 이것들을 모두 지워버릴 수는 없었다. 일찍이 본 적이 있다면 '대낮도 대낮이 보여 준 것들도 이미 내 경험인 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2장

 

병을 앓은 후 몇 달 동안 있었던 일은 기억나는 게 거의 없다. 다만 엄마가 가사일로 이리저리 분주하게 돌아다닐 때 엄마의 무릎 위에 앉아 있거나 엄마의 옷자락에 매달려 있던 광경만 기억이 난다. 나는 두 손으로 모든 물건들을 만져 보고 모든 동작을 관찰했으며, 이를 통해 많은 것들을 알게 되었다. 곧 나는 다른 사람들과 대화하고 싶은 욕구가 생기면서 내 의사를 서투른 몸직으로 표시하기 시작했다.

 

....

 

이 당시에 겪었던 많은 사건들은 이어지지 않고 단편적으로밖에 기억나지 않는다. 그렇지만 지금도 또렷하게 머리 속에 남아 있고, 이들을 통해 나는 듣지도 보지도 못하고 목표도 없던 당시의 삶을 더욱 통렬하게 실감할 수 있다.

 

...

 

아빠는 아주 다정하고 너그러우며 가정적인 분이었다. 사냥 시즌을 빼고는 가족들 곁을 벗어난 적이 거의 없었다. 아빠는 능숙한 사냥꾼이었고 명사수였다. 아빠가 가족 다음으로 사랑한 건 사냥개들과 총이었다. 

아빠는 손님 접대가 지나칠 정도로 후해서 손님을 달지 않고 귀가하는 일이 거의 없었다. 아빠가 특히 자랑하는 건 커다란 정원이었는데, 여기서 아빠는 우리 나라에서 제일 맛있는 수박과 딸기를 재배했다고 한다. 아빠는 내게 최초로 수확한 포도와 최고 품질의 명품 딸기를 갖다 주었다. 아빠가 나무들과 포도넝쿨들 사이로 나를 데리고 다니면서 귀여워해 주던 손길, 그리고 내가 즐거워하는 어떤 일에든 아빠가 흔쾌히 쏟았던 열정을 지금도 나는 기억한다.

아빠는 유명한 이야기꾼이기도 했다. 내가 언어를 배운 후에 아빠는 정말 솜씨 있게 지어낸 이야기들을 내 손 안에 서투르게 글자로 써 주곤 했고, 어느 정도 익숙해지면 내게 그 이야기들을 반복 암송케 하면서 무엇보다도 크게 기뻐했다.

아빠의 사망 소식을 들은 건 1896년에 북부 지방에서 아름다운 여름날의 막바지를 즐기고 있을 때였다. 아빠는 짧게 병을 앓았다. 극심한 고통을 잠깐 치른 뒤에 세상을 떠나셨다. 내가 최초로 겪은 커다란 슬픔이었고, 주변의 인물을 통해 죽음을 경험한 최초의 사건이었다.

 

엄마는 어떻게 소개해야 할까? 내게 너무나 가까운 분이어서 거론하는 것 조차 예의에 어긋날 것 같으니까, 엄마 소개는 그만두겠다. 

 

여동생은 내게 오랫동안 침입자였다. 내가 엄마의 유일한 사랑이던 시절은 이제 끝났다는 생각이 들면서 나는 질투심으로 활활 불타올랐다. 내가 앉아있던 엄마의 무릎도 이제는 늘 동생이 독차지하면서 엄마의 모든 관심과 시간을 앗아 가는 것처럼 보였다.

 

...

 

이렇듯 이중으로 고독한 골짜기를 걸어가는(시각과 청각이 모두 상실된 상태) 아이는 사랑스러운 말과 행동 그리고 동료애에서 피어나는 자상한 사랑을 거의 알 수가 없다. 하지만 나중에 내가 인간의 타고난 품성을 회복하게 되자, 밀드레드와 나는 서로의 마음을 십분 헤아릴 수 있게 되면서 발길 닿는 대로 어디든지 즐겁게 손잡고 돌아다녔다. 동생이 내 몸짓을 이해하지 못하고, 나 또한 동생의 유치한 수다를 알아듣지 못하는 건 여전했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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