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3. 1. 13:25ㆍBook
첫 번째 편지 중에서
이 책을 쓰게 된 진정한 동기를 이야기하라면 교육에 대한 생각을 먼저 이야기하지는 않을 것같다.
혹은 어떤 이유로든 아이들과 떨어져 살아야 하는 부모들을 위한 책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이 편지들 역시 아이들보다도 나 자신을 위해서 쓴 글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지혜로운 부모가 되려면 어찌 살아야 할까?
당연히 중요한 질문이다.
내가 권장하고 싶은 방법이 하나 있기는 하다.
바로 아이들에게 편지를 쓰는 일이다.
이메일이라도 괜찮다.
종이에 쓸 필요는 없지만 공들여서 쓰는 습관은 중요하다.
어차피 허비하기 쉬운 저녁 시간에 글짓기 연습을 하게 될뿐더러 가련한 마음을 건설적으로 위로하는 데는 이만한 방법이 따로 없기 때문이다.
두 번째 편지 중에서
핵심이란 바로 이런 거지.
인류 역사에는 한국 역사도 있고 미국 역사도 있고 일본, 그리스, 인도 등 많은 역사가 있지만, 제각각 다양하게 갈라진 역사를 한데 모아서 모두의 역사를 하나의 긴 맥락 속에서 이해하는 게 정말 중요하다는 것 말야.
각각 다른 이야기가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걸 알게 될 떄는 정말 전율이 일 만큼 재미있지 않니?
아주 오래전에 한국을 떠날 때 아빠 가슴속에 구멍이 생겼다고 했었지?
아마 그 구멍은 영영 없어지지는 않을 것 같다.
다만 그 구멍을 황금의 땅에서 길오 올린 온갖 아름다운 이야기와 그림으로 채울 수는 있을 거야.
내가 한 번도 집을 떠난 적 없다는 사실을, 쉽지는 않겠지만 깨달아가면서 말이다.
왜냐하면 결국 이 온 세계가 바로 내 집이고, 네 집이니까.
언젠가는 아주 돈이 많은 사람도 너무 많이 갖는 다는 게, 다 먹지도 못할 음식을 무조건 많이만 쌓아두는 게 별 의미가 없다는 걸 알게 될 거야.
이 세상 모든 사람은 후대로 이어지는 긴긴 역사를 함께 써가고 있는 거지.
언젠가는 그 후손의 후손의 후손의 후손들도 알게 될 거야.
모든 게 하나의 거대한 이야기로 연결된다는 걸.
그렇게 다시 또다시 써내려가는 이야기라는 걸.
세 번째 편지 중에서
너에게 편지를 쓰고 있으면 언제나 기분이 좋아져.
그러니 이렇게 편지를 쓰고 있는 오늘 밤도 아빠는 분명 잠을 잘 잘 것 같구나.
결국 이 문제는 기계가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가, 아니면 기계란 사람이 주는 지시만 단순 반복할 수 밖에 없는 운명인가 하는 문제란다.
데닛 교수는 결국에는 기계가 사람이 하는 일을 뭐든 기본적으로는 해낼 거라고 보는 쪽이야.
큰 맥락에서 보면 결국은 과학적인 지식, 문화적인 지식, 역사에 대한 이해 등이 세계를 이해할 수 있게 해준다.
개인적인 일상이든 사회적인 변화든, 일어나는 많은 현상은 그 자체로 어떤 질서 있는 줄거리 속에서 전개된다는 사실을 알려주면 무지에서 일어나는 두려움을 없앨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배움을 강조하는 것은 세상에 대한 이해가 다른 사람의 평화에도 기여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 때문일 것이다.
배움이 영적인 성장을 위한 충분조건은 아닐지언정 보통 필요조건이긴 하다는 이야기이다.
다섯 번째 편지 중에서
그 여자 아름다움 속을 걷네, 밤처럼
구름 없는 날, 별 총총한 밤하늘처럼
어둠과 밝음의 가장 좋은 것들
그 모습과 눈동자 안에서 만나네
발가벗은 낮의 하늘 허락하지 않을
달콤한 빛 속으로 녹아드네
그늘 한 점 더했어도, 빛살 한 점 덜했어도
저 형언 못할 우미 절반이 되었으리
새카만 머리칼 올올이 물결치는 아름다움
저 얼굴 위 부드럽게 밝혀주는 아름다움
얼굴에서 드러나는 정갈하게 달콤한 생각들
그 생각 담긴 곳 얼마나 순수하고 사랑스러운지
저 볼 위에 그리고 저 눈썹 위에
그토록 보드랍고 고요한, 그러나 또렷한
모두를 이기는 미소, 홍조 띤 저 빛,
선하게 살아온 날들을 말해주네
땅 위 모든 것과 평화로운 마음을
그 순진한 사랑의 가슴을!
훌륭한 시란 세상의 존재에 대한 시인의 반응을 독창적인 묘사와 깊은 통찰, 그리고 감정적인 이해, 지적인 이해를 모두 혼합하여 함축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상당히 집중하지 않으면 피상적인 이해 수준을 넘어가기가 상당히 어렵다.
그런데 시에 나타나는 언어의 밀도는 의미를 정확하게 파악하지 않아도 마음에 담아두기에 큰 무리가 없도록 해준다.
일단 담아두고 나면 언제든지 곱씹어보며 생각해 보고 점점 깊이 이해할 수 있다.
여섯 번째 편지 중에서
별은 바라보면 바라볼수록 신기해.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게 커다란 불덩어리에서 나와, 상상을 초월하는 거리를 달려온 한 점 빛이라는 사실을 믿기 어려울 정도야.
아마 그래서 고대 그리스 사람들이 별은 행성 바로 뒤에 있다고, 그리 멀리 있지 않다고 생각한 건가 봐.
열한 번째 편지 중에서
낯선 땅에서
내 고향 땅에서는 붉은 번갯불 뒤로
구름이 이런 모양으로 다가오지
하지만 아버지 어머니는 돌아가신 지 오래
거기 누구도 더 이상 나를 알지 못하네
언제쯤, 아, 그 언제쯤 오려나
나도 편히 쉴 그날이
내 위에서는 숲의 고독이
아름답게 속삭이겠네
그리고 여기 그 누구도 나를 알지 못하겠네
후기 낭만주의에 속하는 헤세는 평생 한 도시에 갇혀 사는 것보다는 향수병을 갖고 사는 쪽이 훨씬 낫다고 말했지.
여행은 시작할 때는 좀 번거롭지만 도착하고 나면 언제나 반가운 기분이 들거든.
우리가 어디를 가든 사람들과 그 장소가 우리를 반겨주기 때문이겠지.
열두 번째 편지 중에서
모래 한 알에서 우주를 보고
들꽃 한 송이에서 천국을 본다
그대 손바닥 안의 무한을 붙잡으라
찰나 속의 영원을
새로운 것을 알게 되고 또 이미 알고 있는 것도 더 깊이 있게 혹은 새로운 시각에서 보는 즐거움은 일상적으로 느낄 수 있다.
그 관점에서도 공부를 그칠 이유가 없다.
열세 번째 편지 중에서
이 말은 아침에 일어나서 늦은 밤 잠들 때까지 늘 생각을 하고 있다는 뜻이야.
물론 흥미로운 발견은 그렇게 쉽게 되는 게 아니라서 상당한 인내심이 필요하단다.
외려 위대한 발견은 사소한 발견들이 쌓이고 쌓여서, 느끼기 힘들 정도로 미세하기는 하지만 그게 우리를 목표로 다가가도록 이끌어주었을 때 마침내 나타나는 경우가 더 많아.
사람들은 그래서 '로마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다' 같은 속담으로 인내심의 중요성을 표현하지.
다시는 돌아가리라 희망하지 않기에
희망하지 않기에
돌아가리라 희망하지 않기에
이 사람의 재주와 저 사람의 기회를 탐내는 일
이런 것들을 얻으려 더는 애쓰지 않기에
(늙은 독수리가 왜 날개를 펴야 한단 말인가?)
여느 통치의 권력이 희미해진다고
슬퍼해야 할 이유가 있는가?
다시는 알리라 희망하지 않기에
또렷했던 날의 허약한 영광을
다시는 생각하지 않기에
잠시일지라도 단 하나의 참된 힘을
내가 알지 못하리라는 걸 알기에
거기, 나무가 꽃 피우고, 샘이 흐르는 곳에서
마실 수 없기에
다시는 거기에 아무것도 없기에
시간은 늘 시간이고
자리는 늘 자리일 뿐
실재는 한순간만 실재하고
한 자리에만 있음을 알기에
모든 걸 있는 그대로 즐거워하고
축복받은 얼굴을 거절하며
그 목소리를 거절하련다
다시 돌아가리라 희망하지 않기에
그리하여 나는 기뻐한다 기뻐해야 할
무언가를 만들어야 하기에
기도하라, 신께. 우리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그리고 나 기도하네, 잊게 해달라고
너무 많이 토론하고 설명했던 이것들을
다시는 돌아가리라 희망하지 않기에
이 말들이 답하게 하라
이제 일어난 일, 다시 일어나지는 않기에
우리를 향한 심판이 너무 무겁지 않게 하소서
이 날개들, 더 이상 날 수 있는 것이 아니기에
그저 공기만 부딪히는 날갯죽지일 뿐
이제는 너무나 작고 메마른 공기
의지보다 작아지고 메마른 공기
마음 쓰고 마음 쓰지 않도록 가르쳐주시라
가만히 앉아 있도록 가르쳐주시라
우리 죄인들을 위하여 기도해주소서, 이제 와 우리 죽을 때에
우리를 위하여 기도해주소서, 이제 와 우리 죽을 때에
열네 번째 편지 중에서
세세한 부분은 아직 좀 빠져 있어서 마무리 작업이 필요할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전체 그림이 어떻게 그려진다는 것을, 그렇게 되지 않을 수가 없다는 것을 한번에 보게 돼.
아직 대부분 머릿속 구상으로 나온 것에 불과하더라도 그 결과가 불가피해 보인다는 게 중요한 거야.
미켈란젤로도 조각에 대해서 이와 비슷한 생각을 표현했지.
조각상이 이미 대리석 안에 들어 있고 자기는 그저 깎아낼 뿐이라고.
우리 모두가 어쩌면 똑같은 영감의 원천을 활용하는 거라는 생각은 들어.
그런데 말이지, 마무리가 필요해 보이는 작은 부분들을 꼼꼼하게 들여다보다가 가끔 전체 그림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크다는 것을 알게 될 때가 있어.
빼먹었던 작은 부분이 예기치 않게 캔버스 전체를 망쳐버려서 많은 틈새와 얼룩이 드러나는 거야.
그러면 전체 그림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지.
하지만 그게 또 재미란다.
그렇게 몇 년이 걸릴 수도 있고, 심지어 평생이 걸릴 수도 있어.
다행이라면 그 틈새들이 오래된 성당 벽의 틈새처럼 치명적이지는 않다는 거야.
뫼비우스의 띠는 일부분만 보면 두 개의 면으로 이루어져 있구나 하고 생각하게 되지.
하지만 띠 전체를 인내심 있게 따라가 보면 한 면이 다른 면으로 바뀌면서 둘이 분리되어 있지 않다는 걸 알게 돼.
어느 순간 처음부터 원래 한 면만 있었다는 걸 깨닫는 거야.
게다가 그렇게 쉽게 만들 수 있을 거라고는 상상하지 못했으니 참으로 놀라운 일이지.
마찬가지로 플라톤의 세계와 물리적 세계는 뫼비우스의 띠의 면처럼 같이 가는 거야.
실제로 발견되기 전까지는 전혀 상상하지 못한 방식으로 말이지.
열다섯 번째 편지 중에서
저 멀리서 빛나는 바다
마지막 저녁노을 속에
우리 외로운 낚시터에
말없이 덩그러니 앉았네
안개 피어오르고 물이 차오르네
갈매기 부산히 날았네
네 눈동자 속에는 사랑이 가득 차
흘러내리네, 한 방울 눈물로
네 손에 떨어지는 눈물방울 보았지
그리고 나 무릎을 꿇었지
거기 네 작은 하얀 손에서
나는 그 눈물 한 방울 마시네
그 순간부터 내 몸은 불타올라
내 영혼 그리움으로 죽어가네
비운의 여인이여
그 눈물을 내게 독약으로 주었나 보오
보다시피 주인공은 누가 봐도 이 여인과 막 사랑에 빠졌어.
하지만 누군가를 아주 많이 사랑한다는 건 마치 그 사랑이 눈물로 전해지는 독약이라도 되는 듯 고통스러운 거라고 말하고 있구나.
이게 바로 독일 낭만주의자들이 즐겨 쓰던 극적인 표현이지.
하이네가 때로 이런 종류의 극적인 효과를 일부러 과용했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어.
진짜 낭만주의자들을 비웃어주려고 말이야.
하지만 아빠는 그런 건 전혀 못 느끼겠어.
하이네가 조금 재미있는 성격이었다고는 해도 사람들이 생각하듯 일부러 누구를 놀리려고 했을 사람 같지는 않아.
동물들이 인간의 노래를 좋아한다는 주장은 많은 현대인에게 일종의 농담으로 들릴 것이다.
물론 과학적으로 검증될 가능성은 희박하다.
그렇다면 이런 종류의 신화적인 세계관이 주는 교훈은 무엇일까?
이 문제는 나도 꽤 오랫동안 고민해온 것 같다.
최근 들어서 과학이 정치적인 이념과 복잡하게 엮여버린 분위기 속에서 신화와 과학이 조화로운 평형을 찾기는 점점 어려워진다.
그래도 아이들의 마음속에 현대의 과학적인 지혜가 마술적인 우주와의 연결점을 잃지 않게끔 나 나름대로 아이들이 어릴 때부터 꽤 많이 노력해왔다.
그래서인지 둘 다 어른이 된 지금도 동물들을 위한 노래를 가끔 부르곤 한다.
열여섯 번째 편지
모두가 다르다는 게 얼마나 좋은 건지 학교에서 배울 거야.
모두가 베토벤 같은 음악만 쓴다면 라파엘로처럼 그리는 사람도 한 명도 없을 테고 아르키메데스처럼 재미있는 도구를 만드는 사람도 안 나타날 거야.
그리고 사람들이 서로 다른 언어를 쓰니까 똑같은 시를 영어로도, 한국어로도, 독일어나 일본어로도 읽을 수 있잖니.
이걸 깨닫는 게 곧 세상의 다양성을 받아들이는 거란다.
비단 가족뿐만 아니라, 각기 다른 사람들이 서로 다른 것을 가지고 있음을 깨달아야 해.
그리고 재능이 되었든 장난감이 되었든 자기 것을 다른 사람과 즐겁게 나눠야 하고.
모두가 다른 사람하고 똑같은 그림을 그리고 노래를 부르고 생각을 한다고 상상해 봐, 얼마나 지루하겠니.
이건 아주 중요한 이야기야.
어떻든 굉장히 많은 종류의 사람들이 서로 다른 관심과 강점을 가지고 각자 좋은 일을 하면서 인생을 살아가는 것은 중요한 것 같아.
열여덟 번째 편지
산 정상에는 평화뿐
나무 꼭대기에서도
숨소리 하나 느껴지지 않네
새들이 숲 속에서 잠자네
이제 곧
그대도 쉬게 되리
시인은 은하수 가득한 아름다운 밤하늘이나 지평선 위로 환하게 떠오른 은빛 달을 계속 더 노래할 수도 있었을 거야.
하지만 가끔 아주 간단한 몇 줄이 더 좋을 때가 있지.
특별한 순간을 그저 즐기고 싶으니까 말이야.
한 가지 고백하자면 이 책에 실린 편지들의 내용은 요즘 말로 표현해서 '선행학습'에 가까울 것이다.
아이들이 온전히 이해하기에는 너무 많은 정보와 내용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선행학습이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이해하지는 못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걱정하고 많은 경우 아이들을 괴롭히는 관습인 것은 사실이다.
결국 내가 중요시하는 선행학습은 '세상이라는 책'을 마주쳤을 때 의미 있고 재미있게 읽는 데 필요한 언어의 학습이었다.
누가 무엇을 언제 공부하는 것이 좋은가에 대한 판단은 너무 어렵기 때문에 그에 대해서 내가 함부로 의견을 표할 수 없다.
단지 우리 아이들이 자랄 때 했던 선행학습을 요약해보면, 역사와 미술과 시와 문학이 수학보다 훨씬 자연스럽게 습득됐다고 말할 수 있다.
열아홉 번째 편지
내게 한때 아름다운 조국이 있었네
떡갈나무
거기서 높이도 자라고, 제비꽃은 상냥하게 인사했지
그건 꿈이었네
독일어로 속삭이는 입맞춤을 받았네
믿을 수 없을 거야,
그 소리가 얼마나 좋던지, '너를 정말 사랑해!' 그 낱말이
그건 꿈이었네
네가 짐작했을지 모르겠지만 하이네는 파리에 살 때 이 시를 썼어.
하이네가 독일에서 어려운 일을 많이 겪어서 결국 파리에서 살아야 했다고 전에 말했지.
하이네는 독일 정부의 보수주의를 거세게 비판하는 정치적인 글에서조차 독일 산과 나무의 아름다운 풍경을 아주 사랑스럽게 묘사했어.
독일 정부의 관행을 비판했던 것은 그가 자라난 땅의 사람들을 정말로 사랑하고 그리워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
그래서 위에서 말한 시에서 나는 그가 독일의 떡갈나무, 그리고 모국어를 쓰는 사람들과의 우정에 대한 그리움을 조금도 과장하고 있다고는 느껴지지 않았어.
진실은 이런 거야.
자연과 인간, 우리를 둘러싼 우주의 진정한 사랑에 대한 심오한 질문들은 우리 각자가 사랑하는 스승이 부처든 예수든 루터든 바오로 성인이든 마호메트든 소크라테스든, 언제나 사람들을 같은 지점으로 데리고 간다는 거지.
아빠가 볼 때 사람들은 근본적인 차이를 사실 그렇게 강하게 믿지 않아.
내가 겪은 바로는, 인내심 있게 진지하게 질문을 받았을 때도 그런 믿음을 고수하려 하는 사람은 거의 없어.
그렇지만 사람들은 그냥 습관적으로 상처 주는 말을 하기도 하지.
하지만 안타깝게도 대학의 사람들 역시 사회가 던져주는 불안을 마주하면 엄청난 두려움과 단순함으로 대응하곤 한단다.
그래서 가끔 그들이 세상의 문제가 자기들보다 덜 교육받은 사람들 때문에 생긴다고 말하는 경우를 볼 수 있어.
딱한 일이지.
물론 아빠는 배움의 중요성을 강하게 믿어.
그러나 우리가 더 많이 배울수록, 진정한 이해는 물질세계에 대한 지식 너머에 놓여 있다는 게 더욱 분명해지는구나.
여행 혹은 책을 통해 세계를 공부하는 것은 우리가 진실의 문으로 곧장 걸어가도록 도와줄 수 있지만, 마지막 발걸음을 떼려면 결국은 자기 가슴과 영혼을 들여다보아야만 해.
그래야 말과 개념이 전혀 의미를 갖지 못하는 신비스러운 곳으로 들어갈 수 있단다.
실제 삶을 구체적으로 들여다보면 대부분 사람들은 외면적인 구분과는 상관없이 다른 사람을 사랑하고 이해할 수 있고 실제로도 그렇게 하고 있단다.
물론 사람들은 생김새도 다르고 가진 재능도 다르고 말하는 방식도 달라.
하지만 삶에서 정말 중요한 문제에 관해서 이렇게 저렇게 사람들이 나뉘어야 할 만큼 커다란 차이는 없어.
사는 게 그런 것 같아.
우리는 한 장소에서 다른 장소로 옮겨가면서, 서로를 전혀 이해할 수 없을 것 같은 때조차, 결국에는 같은 걸 찾고 있는 온갖 영혼들을 만난단다.
우리는 만나고, 기회가 주어지면 얘기하고, 서로 악수하고 아주 얇은 선이나마 한 번에 하나씩 연결점을 만들어가.
그리고 마침내 그 점들이 우리가 자주 이야기하는 하나의 세계라는 완성작을 만들어내는 거지.
약간 엉뚱하게 들리겠지만 인생에 후회는 없다는 느낌이 요새 특히 많이 드는 것은 그야말로 죽음을 생각해도 별로 두렵지 않기 때문이다.
전혀 안 무섭다고 이야기하지는 못한다.
특히 인생의 끝에 몸을 제대로 쓰지 못해서 남에게 의존해야 하는 일이 생긴다는 것은 여전히 두렵다.
그런데 죽음 자체에 대해서는 편안한 마음이 어느 정도 가능해진 것 같다.
어떻게 해서 이 정도로 운 좋게 살 수 있었는지 잘 몰라 가끔 죄책감이 들기도 하지만, 계속 평화롭게 공부하면서 인생을 마칠 수 있다면 끝까지 후회가 없을 것 같다.
스무 번째 편지
아빠는 조금도 미래가 두렵지 않았단다.
그건 내가 니콜보다 용감해서는 아니었어.
그저 내 수련 여행이 끝날 거라고는 한 번도 기대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야.
결국 나는 세계를 알기 위해 집을 떠나기로 마음먹은 거였어.
그러니 오래도록 떠돌아다닐 거라고 기대할 수밖에!
어쩌면 언젠가 인도에서 한국으로 경전을 갖고 돌아온 승려들처럼 나도 돌아올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단다.
하지만 정착하지 못한다고 해서 특별히 두려운 마음은 들지 않았어.
너와 나일이가 크면 아주 심오한 차원에서 더욱 재미있어질 거라고 생각한다.
너희 둘 모두 공부도 하고 건강도 유지하고 여러 가지 인내심을 배우면서 지금부터 그 여행에 준비해야 해.
그나저나 수련 여행이 단지 여기서 저기로 옮겨가는 물리적 과정이 아니라는 걸 이야기해둬야겠구나.
수련 여행이란 플라톤이 설명한 죽음과 환생 사이의 시간처럼, 영혼의 여행 같은 거라고 아빤 생각해.
그럼 영혼이 우주로 날아올라 새로운 세계와 은하를 만났을 때는 뭘 배울까?
그건 잘 모르지만, 아무튼 그 여행을 마친 영혼은 얼른 이 땅에 태어나서 부모에게 여행에 대해 전부 말해주고 싶어서 아주 신이 난단다.
바로 그래서 아기들이 그렇게 우는 건지도 몰라.
하지만 여행은 태어났다고 해서 끝나는 게 아니란다.
우리는 삶에서, 죽음에서, 그 사이에서도 늘 여행하고 있다는 말이지.
한겨울 봄은 시간으로부터 독립된 계절,
해 질 무렵 언 땅이 녹아 질척거리지만
영원한 봄이 북극과 남극 사이에, 시간 속에 걸려 있다
짧은 낮이 서리와 불로 가장 빛날 때,
짧은 태양이 연못과 도랑의 얼음판을 불태운다
무풍의 추위지만 가슴에 불이 붙는다
햇빛이 물거울에 반사된다
이른 오후에 태양이 눈부시게 빛난다
불타는 황금빛 나뭇가지나 화롯불보다 더 작렬하는 햇빛이
벙어리 영을 깨운다: 바람은 없지만 오순절 성령의 불이
한 해의 어두운 시간에 불붙는다.
녹았다 얼었다 하는 사이에 영혼의 수액이 진동한다.
땅 냄새도 생물 냄새도 없다.
때는 봄철이지만
시간의 계약 속에 있지 않다.
지금은 울타리가
한 시간 동안 잠깐 핀 눈꽃으로 하얗게 표백된다.
여름 꽃보다 더 갑자기 피는 꽃,
싹 틔우지도 시들지도 않는다
생성의 계획 속에 있지 않은 꽃
그 여름은 어디 있는가?
그 상상할 수 없는
영의 여름은?
우리가 시작이라 하는 것은 자주 끝이니
끝냄은 시작함
끝은 우리의 출발점.
그러므로 딱 맞는
모든 문구와 문장
(모든 단어가 편안하고 다른 단어를 받쳐줄 자리에 있고, 단어자 자신이 없지도 않고, 자랑하지도 않으며, 옛것과 새것의 용이한 교류, 속됨 없이 정확한 일상어, 정확하나 현학적이지 않은 문어가 더불어 춤추는 완전한 조화)
모든 문구와 모든 문장은 끝이며 시작,
모든 시는 하나의 묘비명.
모든 행동은 처형대, 불, 바다의 목구멍이나
판독하기 어려운 비석에 이르는 계단.
여기가 우리의 새로운 출발점
우린 죽어가는 이들과 더불어 죽는다:
보아라, 그들이 떠난다.
우리도 그들과 함께 간다
우리도 죽은 이들과 함께 태어난다:
보아라, 그들이 돌아온다, 그리고 우리를 데려온다
장미의 순간과 주목의 순간은
같은 기간이다.
역사 없는 민족은
시간에서 구원받을 수 없다.
역사는 영원한 순간들의 패턴인 고로.
그러니, 어느 겨울날 오후,
외진 곳 예배당에 저녁노을 질 때,
역사가 지금 영국에 있다,
하느님의 사랑의 이끄심과 부르시는 그의 음성으로
우리는 탐험을 멈추지 않으리
그리고 그 긴 탐험의 끝에
출발했던 그곳에 도착하리
그리고 그곳을 처음으로 알게 되리
발견해야 할 마지막 남은 땅이
처음에 있었던 땅일 때
미지의, 잊힌 문을 통하여
가장 긴 강의 수원지에서
보이지 않는 폭포 소리,
사과나무의 어린이들 소리,
찾지 않아 알지 못하나,
바다의 두 물결 사이의
고요한 순간에 들린다, 희미하게 들린다
지금 빨리, 여기, 지금, 항상
완전한 단순성의 상태
(모든 것을 희생해야 얻을 수 있는 것)
그러면 모든 것이 잘 되리라
만사형통하리라
불의 혓바닥들이 안으로 접혀
왕관 쓴 불의 매듭을 맺을 때
그러면 불과 장미가 하나
출처: <삶이라는 우주를 건너는 너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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