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1. 23. 10:25ㆍBook
(책 속에서)
자연으로부터 배울 수 있는 것
"자연은 대체 어디서 생겨난 걸까? 영혼도, 무도 존재하지 않았을 때, 어둠이 어둠 속에 숨겨져 있었을 때, 대체 누가 이 우주를 방출했을까? 창조는 어떻게 이루어졌을까? 누가 이 비밀을 알까?"
우리는 이 오래된 질문 속에서 일부 문제들이 이미 해결되어 있다는 점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의 순환입니다. 씨앗으로부터 나무가 되고, 결국에 가서는 다시 씨앗으로 되돌아갑니다. 자연에 있는 모든 것이, 어떤 씨앗, 원천, 섬세한 형상에서부터 시작해서 점점 더 거칠어지다가, 일정한 시간이 지나고 나면 다시 원래의 그 섬세한 형상으로 디돌아갑니다. <베다>는 이 관념을 다음과 같은 말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한 덩이의 흙을 이해하는 것만으로, 우리는 우주에 있는 모든 흙의 본성을 이해할 수 있다."
모래 한 알을 진정으로 이해할 수 있다면, 우리는 전 우주의 비밀을 이해하게 될 것입니다. 이런 사고방식을 적용해 보면, 우리는 무엇보다도 먼저, 모든 것의 처음과 끝이 비슷하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이로부터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요? 우리는 이를 통해 현현된 상태, 또는 거친 상태가 결과이고, 미세한 상태가 그 원인이라는 사실을 배울 수 있습니다.
자연의 순환
상승과 하강에 대해 배워야 할 점이 있습니다. 씨앗은 심는 즉시 나무가 되지 않습니다. 그것은 비활성화된 것처럼 보이는 매우 미세한 활동기를 거칩니다. 씨앗은 땅 아래에서 일정 기간 머물러야 합니다. 씨앗은 땅속에서 조각으로 부서지며 변질되고, 그 변질된 상태로부터 다시금 재생되어 나옵니다.
운명을 자유롭게 선택하다
우리는 우리가 뿌린 씨앗을 거둘 뿐입니다. 우리는 자기 운명의 창조자이므로, 우리 자신을 제외한 그 누구도 비난이나 칭찬을 대신 받아서는 안 됩니다. 운명을 결정짓는 건 바로 우리 자신입니다. 신을 심판자나 보상자로 만드는 우리의 태도는 무지의 산물입니다. 그는 심판하지도 보상하지도 않습니다. 그의 무한한 자비는 모든 이들에게, 모든 장소에서, 언제나 열려 있습니다. 모든 조건하에서 그 자비는 변함이 없고, 흔들림이 없습니다. 그 자비를 어떻게 활용할지는 '우리 자신'에게 달려 있습니다. 그러니 인간을 비난하지도, 신을 비난하지도 마십시오. 고통받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면, 스스로에게 책임을 물은 뒤, 더 잘할 수 있도록 시도해 보십시오. 이것만이 문제에 대한 유일한 해결책입니다.
타인을 비난하는 사람들은(안타깝게도 그 수는 나날이 증가하고 있습니다만) 대개 불행한 영혼들로서, 이해력이 부족합니다. 그들은 자신의 실수로 그 지경에 처했으면서도, 그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타인을 비난합니다. 하지만 그런다고 상태가 호전되는 건 아닙니다. 이런 태도는 어떤 도움도 안 됩니다. 다른 사람에게 비난을 떠넘기고자 하는 시도는 자신을 더 약하게 만들 뿐입니다. 그러니 책임을 그 누구에게도 전가하지 마십시오. 자신의 두 발로 일어서서 그 모든 책임을 스스로 짊어지십시오. 일어서서 대범하고 힘 있게 행동하십시오. 그 모든 책임을 당신 자신의 어깨 위에 짊어지고, 당신만이 당신 운명의 창조자임을 분명히 아십시오.
당신이 원하는 힘과 도움은 모두 당신 내면에 존재합니다. 그러니 자신의 미래를 스스로 결정하십시오. 과거는 묻히도록 내버려 두십시오. 각각의 생각과 말과 행위가 당신 내면에 그대로 저장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활력을 불어넣는 희망과 선한 생각과 선한 행위는 언제든 솟아날 준비가 되어 있다는 사실을 항상 기억하세요. 그것들은 당신을 언제나, 영원토록 보호해주는 수천만 천사들의 힘을 등에 업은 채 솟아날 것입니다.
미래의 희망
어떻게 보면 상황은 이미 조성되어 있습니다. 모든 사람이 각자 자기만의 사고방식을 지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 자연스런 사색의 흐름은 항상 방해를 받아 왔고, 지금도 여전히 방해받고 있습니다.
사실, 우리와 똑같이 생각하지 않는 자들에게 가해지는 이 박해야말로 모든 박해 중 가장 무서운 박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대체 왜 모든 사람이 똑같은 생각을 지녀야 하는 걸까요? 저로서는 어떤 이유도 찾을 수 없습니다. 제가 이성적인 인간이라면, 저는 다른 사람의 생각과 제 생각이 같지 않다는 사실에 기뻐할 것입니다. 생각하는 존재들은 서로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다양성이야말로 생각의 징표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만일 사려 깊은 사람이라면, 저는 의견의 차이가 존재하는 곳에서, 사려 깊은 사람들 속에서 살아가고 싶어 할 것이 분명합니다.
저는 종교들이 서로 모순되지 않는다고 믿습니다. 그들은 서로를 보완해 줍니다. 각 종교는 위대한 절대적 진리의 일부를 취한 뒤, 진리의 그 측면을 구체화시키고 부각시키는 데 자신의 모든 힘을 쏟아붓습니다. 따라서 필요한 것은 배척이 아닌 첨가입니다. 위대한 이상 하나를 구현시킨 체계들이 연달아 일어날 때는, 하나의 이상을 다른 이상 위에 첨가시켜 나아가야 합니다. 인류는 바로 이런 식으로 나아갑니다.
당신의 과거를 되돌아보며 그것이 무의미했다고 말해서는 안 됩니다. 당신의 현재 상태는 어린 시절의 지적 능력에 무언가를 더한 총체이기 때문입니다.
(단순히 요가 동작과 호흡 정도만 알고 있던 내가, <베다>라는 경전에 대해 제대로 알게 된 것은 이 책을 통해서였다. 이 책을 두 번 정독해보니, 책 속의 가르침이 처음과는 다르게 느껴졌다. 예전에는 동양 철학 서적을 읽을 때 무의식적으로 죄책감이 들었다. '나는 천주교 신도인데 다른 종교 관련 가르침을 읽었다가 혼나는거 아닌가?'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었다.
사실 나의 호기심은 이런 것이였다. 다른 종교를 믿고 싶다기 보다는, K팝 음악만 주로 듣다가 클래식에도 관심이 생기고, 재즈에도 관심이 생겨 들어보는 정도였다. 그동안 나도 모르게 특정 고정 관념, 규칙에 얽매였던 것 같다. 특히 종교, 사회적인 고정 관념이 내 머릿속에 제대로 입력이 되어있나보다.
다양한 종교에서 비롯된 가르침을 읽다보면 영성(?)은 잘 모르겠지만 할아버지, 할머니께서 해주시는 조언과 비슷한 부분을 찾아낼 수 있다. 단어만 다를 뿐 오래된 조상들의 가르침에서 비슷한 부분을 찾아내는 것은 흥미롭다.
우리 모두는 진리를 서로 다른 관점에서 바라본다. 우리는 같은 대상 또는 상황을 각자가 경험한 만큼의 지식과 가치관으로 바라본다. 그리고 각자 살아온 환경이 허용하는 만큼 진리를 바라보면서, 그것을 각자의 시선으로 이해하고 받아들인다. 이 책을 통해 알 수 있는 사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동일한 절대적 진리에 속해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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