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현재

2023. 12. 16. 04:06B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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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에서의 시간

 

시간에 대한 견해는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첫째, 시간을 감각적 세계의 밖에 존재하는 어떤 절대적인 존재로 보는 것

둘째, 시간을 감각적 세계에 관련시켜 시간을 경험적 세계에 속한 것으로 파악하는 것

불교는 두 번째에 해당한다.

일반적으로 불교에서 시간을 논할 때 찰나 또는 겁이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찰나는 세상 모든 것이 멸했다가 생기면서 계속되어 나간다는 뜻이고, 겁은 무량수로 헤아릴 수 없는 시간이자 우주의 생장과 소멸에 적용되는 시간단위이다.

불교에서 시간은 인생을 힘들게 하고 고통스럽게 하는 고뇌의 주체이다.

이 궁극적 도달점이 해탈이라고 한다면, 그 해탈은 시간을 초극하는 것이다.

이 초극의 대상인 시간을 불교식으로 말하면 윤회이자 무상이라 할 수 있다.

즉 불교에서 시간은 존재의 생멸에서 체험하는 바의 의식된 시간이다.

 

불교의 제행무상이라는 표현에서도 불교의 시간을 파악할 수 있는데, 제행, 곧 '모든 현상'이 존재라면 '무상'은 부단히 흘러가는 비대칭적 시간을 의미한다.

우리가 실재하는 것을 존재라 부르든 현상이라고 부르든 그러한 것들은 사실 시간 안에서 고찰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존재는 시간이다.

시간에는 별도의 실체가 없고 현상에 의존하여서 비로소 있게 되는 것이므로 과거와 미래는 지금은 없지만 아주 없는 것이 아니라 서로 연관을 두면서 관념 속에 있는 것이다.

 

의식은 반드시 그것의 대상을 갖게 되는데, 그 의식의 대상으로서 과거도 미래도 있어야 한다.

모든 것은 업의 결과로 인해 있는 것이다.

현재의 과보는 과거 업의 원인에서 유래하고 미래의 과보는 현재 업의 원인에 의해 결정된다.

따라서 과거도 현재의 업인으로서 실재하여야 한다.

 

헤아릴 수 없는 무량겁의 시간이 곧 하나의 생각 속에 있으므로 시간은 과거, 현재, 미래로 분열되지 않고 한꺼번에 현재로서 만개한다고 주장한다.

즉 시간에는 차이가 없으며 일체가 유일하게 현재만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주장한다.

 

시간상 과거, 현재, 미래의 구분이나 공간 상 상중하의 구분은 상대적 관계성만을 말할 뿐 어떤 본질이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사물의 실체성은 물론이거니와 시간의 실체성도 부정하는 것이다.

 

불교의 시간은 윤회사상에서 집약되어 나타난다.

'무상한 것은 괴로운 것이다'라고 할 떄, 무상은 바로 고통으로 직결되며 윤회생존의 괴로움을 뜻한다

시간이 존재한다는 것은 괴로움의 길이 끝나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우리의 시간이 윤회생존의 괴로움의 시간이지만 불교의 시간은 비극적 상황 속에서 열반적정하라는 희망의 메시지를 전한다.

윤회생존을 괴로움으로 바라보는 지각이 싹틀 때 괴로움을 벗어나는 해탈의 문이 열리는 것이다.

 

 

 

출처: 【불교의 시간】 - 영원한 현재와 초월성 : 네이버 블로그 (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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