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1. 11. 20:33ㆍBook
라캉은 정신분석가이면서도 철학에 예사롭지 않은 관심을 가졌다.
라캉이 말하고 싶어하던 것은 이것이다.
'데카르트의 방법을 경유하지 않으면 프로이트가 발견한 것의 임팩트가 얼마나 큰지를 알 수 없으며, 프로이트의 발견으로 인해 데카르트의 방법이 가진 진정한 가치가 처음으로 드러났다.'
이렇게 주장함으로써 라캉은 한편으로 정신분석을 신경증의 치료 기법에서 하나의 사상으로 변모시켰으며, 다른 한편으로 철학자들을 정신분석으로, 그 자신의 말을 빌리자면 '프로이트의 장'으로 꾀어낸 것이다.
라캉은 프로이트가 '무의식적 사고'라 불렀던 의식되지 않는 사고를 데카르트와 대비시키면서 새로이 부각시키고자 했다.
데카르트는 의심하는=생각하는 '나', 자신이 지금 생각하고 있음을 생생하게 인식하고 있는 '나'라는 존재를 문제시했다.
이에 비해 프로이트는 '내'가 짐작조차 할 수 없는 사고로서 무의식을 규정한다.
프로이트로 인해 사고는 '나'로부터 완전히 떨어지게 되었다.
이는 '주체'와 '나'를 명확히 구분하는 것이기도 하다.
무의식의 발견에서 언어가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고 한다면?
라캉에게 '주체'란 다름 아닌 '말하는 주체'다.
주체가 먼저 있어서 언어를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언어가 마치 환경처럼 존재하고 그 환경에 몸을 던짐으로써 사람은 주체가 된다.
라캉은 이러한 언어의 장을 '타자(Autre)'라고 부른다.
어머니가 아이에게 언어를 전달하는 것은 욕망을 전달하는 것이기도 하다.
인간은 매우 미발달된 상태로 태어나기에 타자의 도움 없이는 생명을 유지할 수 없다.
때문에 이 '타자'가 무엇을 생각하는지, 무엇을 원하는지의 문제에 아이는 사활을 걸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 물음을 풀 실마리는 타자가 하는 말에서 얻을 수 있다.
타자의 욕망을 묻는 것과 언어를 획득하는 것은 아이가 주체가 되는 과정의 두 가지 측면이다.
중요한 것은, 이 프로세스 속에서 아이 자신의 욕망, 주체로서의 욕망이 생겨난다는 점이다.
우리들의 욕망은 어디까지나
우리들에게 가장 중요한 누군가의 욕망과 만난 결과로서 생겨난다.
그렇기에 우리들이 소망하는 것에는 반드시 '타자'가 욕망하는 존재,
즉 '타자'에게 어떠한 가치를 지닌 존재가 되길 원하는 근원적인 욕망이 내재해 있다.
출처: <라캉과 철학자들>